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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앞니 빠진 새앙쥐

by 장돌뱅이. 2021. 12. 15.


손자 1호가 젖니 갈이를 시작했다.
누구나 그 시절엔 그랬듯 손자에게도 굉장한 변화의 경험인지라 호기심과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치과에서 이를 뺄 때 울지 않았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대견해 하는 득의만만의 자세로 입을 벌려 보였다.
빠진 이를 지붕에 던지며 새 이를 달라고 까치에게 빌던 나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손자는 작은 보관함 속에
쌀알만 한 옛 이를 소중한 보물인 양 넣어 두고 있었다. 이가 빠진 자리로 발음이 새어나오는 게 느껴졌다.

앞니 빠진 중강새 우물가에 가지 마라
붕어 새끼 놀란다. 잉어 새끼 놀란다

이가 빠진 어린 아이를 놀리는 전래 동요다.
중강새는 '앞니가 빠져 이의 중간이 새어 보인다'는 뜻인 것 같다.
내 기억으로는 '앞니 빠진 새앙쥐'인데 교과서에는 중강새로 실려 있다고 한다.
아무려면 어떤가. 아내와 나는 붕어나 잉어가 아니라 고슴도치이므로.

"우리 손자는 이가 빠져도 이쁘네!"


손자와 비슷한 현상, 다른 의미로 나도 이가 흔들리고 있다.
걸핏하면 잇몸이 부었다가 가라앉으며 이가 시큰거리는 일이 반복된다. 내 몸은 이제 스스로 새 이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몇 해 전에 이를 두 개인가 갈았는데 또다시 주변 이들이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지 말고 병원에 가라고 하지만 '귀찮니즘'에 코로나를 핑계로 미루고 있다.

살아온 날이 두터워지고 살아갈 날이 얇아지는 시간은 서글픔에 앞서 불편함과 함께 온다.
'늙으니까 이렇게 편한 줄 모르겠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의 긍정과 허세가 공존한다.
60이 넘으면 몸이 해마다 달라지고, 70이 넘으면 달마다 달라지고, 80이 넘으면 날마다 달라진다는 농담이 농담만은 아니다.
아픔과 불편함은 관념이 아니어서 쉽게 긍정하고 익숙해지기 힘들다. 거부할 수 없는 섭리이기에 어쩔 수 없이 견딜 뿐이다.

진짜 노년은 호기심이 사라지는 순간 시작된다고 한다. 
아내와 특별한 것 없이 반복하는 단순하고 적요로운 일상 - 음식, 음악, 커피, 산책, 독서, 영화-에,
가끔씩 떠나는 여행에, 손자의 놀이와 장난감과 서툰 그림과 글에, 그리고  오랜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
어떤 새로운 의미를 더할 수 있는 감성과 의지가 줄어들 때 노년이 진행된다는 경구일 것이다.

육체의 기능이 쇄락하고 여기저기 불편함이 늘어도  세상을 다 알아버린 ,혹은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살았던 자의 흔적'만 남은 듯한, 완고함이나  메마름 대신에
언제나 조금은 부족하고 허술하여 철없는
노인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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