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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겨우 65살!

by 장돌뱅이. 2021. 12. 4.

아내와 함께 늘 해오는 오후 산책을 평소보다 조금 일찍 마쳤다.
저녁 준비를 위해  장을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65번째 생일.
채끝 등심 스테이크와 주꾸미 샐러드, 해물잡채를 만들었다.

그리고 모짜르트를 들으며 아내와 와인 잔을 부딪쳤다.

"이제 겨우 65살이잖아!
Long Long Time to Go!"


모짜르트를 들을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면, 살아 있어 모차르트를 들을 수 있는 축복의 날엔
즐거움으로 평소에 없던 호기를 부리거나 낯간지러울 수도 있는 시 한 편을 소리내어 읽어도 좋으리라.

 

 

 

 



우리는 누구입니까
빈 언덕에 자운영꽃
혼자 일어설 수 없는 반짝이는 조약돌
이름을 얻지 못한 구석진 마을에 투명한 시냇물
일제히 흰 띠를 두르고 스스로 다가오는 첫눈입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늘 앞질러 사랑케 하실 힘
덜어내고도 몇 배로 다시 고이는 힘
이파리도 되고 실팍한 줄기도 되고
아, 한 몫에 그대를 다 품을 수 있는
씨앗으로 남고 싶습니다

허물없이 맨발인 넉넉한 저녁입니다
뜨거운 목젖까지 알아내고도
코끝으로까지 발이 저린 우리는
나무입니다

우리는 어떤 노래입니까
이노리나무 정수리에 낭낭 걸린 노래 한 소절
아름다운 세상을 눈물나게 하는
눈물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그대와 나는 두고두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네게로 이르는 길
네가 깨끗한 얼굴로 내게로 되돌아오는 길
그대와 나는 내리내리 사랑하는 일만 
남겨두어야 합니다

- 정두리, 「그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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