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어쑤언(ออส่วน)

by 장돌뱅이. 2021. 12. 9.

바야흐로 굴의 계절이다.
'나 혼자 단골'로 생각하는 곳에서 굴을 주문하여 날로도 먹고, 굴국과 굴밥으로도 만들어 먹었다.
남은 것으로 태국 굴전이라 할 어쑤언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어쑤언은 굴과 함께 달걀, 숙주, 녹말, 파 등을 볶아서 만든다.
부드러운 달걀과 아삭거리는 숙주와 어울리면서 굴 본연의 향과 맛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태국 음식에는 숙주나물이 자주 쓰인다. 쌀국수 꿰띠여우와 볶음국수인 팟타이에 고명처럼 들어가기도 하고 어쑤언처럼 살짝 볶아서 쓰기도 한다. 거의 생것으로 들어가도 다른 재료와 섞여서인지 태국 음식에선 숙주 비린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태국 방콕 식당 "손통포차나"의 어쑤언

인터넷을 참고하여 만들었더니 겉모양새는 제법 태국 현지의 것과 비슷하게 나왔다.
맛도 비슷하지 않냐고 아내에게 편파적인 판정을 강요해 보았다.

내게 여행의 많은 부분은 그곳의 음식이다.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특히 더 그렇다.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여행하거나 살면서, 그곳 사람들에게 배우고 길들여진 입맛이 있어 그럴 것이다.
음식은 추억을 소환하는 강력한 촉매다. 그리고 추억은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다.


흑사병은 14세기의 팬데믹(Pandemic) 감염병으로 1331년부터 1353까지 전 세계적으로 75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무려 22년 동안 재난이 이어진 것이다. 또 1817년 인도에서 시작한 콜레라는 1826년부터 1837년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로 확산해서 흑사병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150만 명 이상이 콜레라로 사망했다고 한다. 코로나 팬데믹은 이제 만 2년, 전례에 비추어 아직 우리가 인내해야 할 시간은 어쩌면 아직 한참 남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가능한 짧아지기를 간곡히 바라지만, 길이 막히면 뒤를 돌아보는 여유도 필요하겠다.

'짝퉁' 어쑤언을 먹으며 아내와 나는 당연으로 알았던 지난 시간의 따뜻한 기억들을 떠올려 보았다.
한바탕 웃고 떠들던 가족과 태국 친구들, 북적이는 거리, 금빛 사원, 기도 올리는 사람들, 맑고 투명한 바다, 싱그러운 바람······.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3차 백신과 한파주의보  (0) 2021.12.17
앞니 빠진 새앙쥐  (0) 2021.12.15
기러기  (0) 2021.12.08
겨우 65살!  (2) 2021.12.04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0) 2021.12.0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