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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원하나이다

by 장돌뱅이. 2021. 12. 24.

아내가 쓴 신약성경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이번 크리스마스부터 아내는 성경 쓰기를 하겠다고 노트를 구입했다.

몇 해 전 아내는 신약성경을 필사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구약을 쓰겠다고 한다.
5년쯤 잡는다고 하지만 그 5년은 반드시 시간적인 계획이 아니라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쓰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분명 아내는 그보다 앞서 구약 필사를 끝낼 것이다.   

나는 뭘할까 생각하다가 아내가 성경을 쓰는 동안 마주 앉아 영어 성경을 읽기로 했다. 아내보다 오래 걸리지 싶다.

연애시절 아내는 내게 영어 성경인 "GOOD NEWS BIBLE" 선물한 적이 있다.
둘 다 기독교인은 아니었을 때지만 예수라는 젊은 사내를 '스도 형님'으로 부르며 함께 좋아했었다.
이번에는 "THE CATHOLIC BIBLE"을 읽어볼 예정이다.


천주교인으로 세례를 받았음에도 특별히 신의 현존을 느끼며 살지 못하니 교인이라고 내세우기가 겸연쩍다.
코로나가 창궐하면서는 뜸하게 나가던 미사 참석조차 끊은지 오래고 아내와 둘이서 하루에 묵주기도 한 번
하는 게 전부이니 더욱 그렇다. 정치와 전염병의 소용돌이 속에 사람에 대한 사랑이나 영혼의 구원은커녕
최소한의 위안도 주지 못하는 종교인들의 작태를 보며 신의 존재에 회의를 느껴보기도 한다.


성경을 쓰거나 읽는 것이 신에 대한 사랑이나 충성 '서약'(?)일 수 없다. 그냥 읽고 쓰는 것이다.
'바닷가에서 조개껍질 줍듯' 조금이나마 그분 뜻을 새겨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어림없는 욕심일 뿐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아내는 창세기의 첫 문장을 쓰고 나는 읽기를 시작했다.
한가로움이 감미롭게 스며들었다. 그것으로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고 해도 좋았다.


쓸모없는 것들을

목숨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영혼의 강인함을

내가 원하나이다

내게 원하나이다

-김선우, 「무신론자의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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