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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동지 팥죽

by 장돌뱅이. 2021. 12. 23.


"동지는 무슨 날?"
"밤이 제일 긴 날."
"뭘 먹지?"
"팥죽!"

뜻밖에 손자 친구는 잘 알고 있었다.
밤이 긴 것은 (어린이용) 절기 달력을 보고 알았고, 팥죽 먹는 건 동화에서 읽었다고 했다.
전래 동화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는 할머니를 잡아먹으려는 못된 호랑이를, 할머니에게 팥죽을 얻어먹은
지게, 멍석, 절구, 개똥, 알밤, 자라, 송곳이 힘을 합쳐 혼쭐을 낸다는 이야기다.


이야기 속의 호랑이는 백성을 쥐어짜는 탐관오리이거나 세도를 부리는 양반계급을 상징하는 것 같다.
할머니에게 부당한 고통을 강요하던 호랑이를 작고 시시한 존재들인 지게와 멍석, 개똥과 알밤 등이 
각각의 장기(長技)를 발휘하여 물리치는 과정이 재미있고 통쾌하다.

동지 팥죽은 삿된 기운을 내몰고(辟邪)  잡귀를 쫓아내려는(逐鬼)의 의미가 있다.
옛날 사람들은 붉은 빛의 팥죽이 재해와 돌림병을 유행시키는 나쁜 귀신을 막아준다고 믿었던 것이다.
제발 2년째 우리의 일상을 칭칭 옭아매는 코로나 '귀신'에게도 효험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동화처럼
국민들에게 온갖 추태를 부리면서도 사과는커녕 부끄러움도 모르는 우리 사회의 삿된 '호랑이'들도 물러갔으면 싶다.


단짠단짠의 입맛에 길들여진 손자친구가 팥죽의 구수한 맛을 좋아할까?
생각보단 잘 먹었다. 그런데 한참을 먹다가 할머니에게 가만히 말을 했다.
"사실 맛은 별로 없지만 할머니가 만들었으니 먹는 거야."
"허!······"
이제껏 들어본 손자친구의 말 중에 가장 어른스럽고 의젓한 말이었다.
코로나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그래서 걱정이고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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