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대박의 꿈

by 장돌뱅이. 2021. 12. 22.

손님들과 골프 모임을 갖는 중이었다.
드라이브샷을 날리고 필드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아랫배가 묵직해 왔다. '자연의 부름(Nature's Call)'이었다.
(음······ 우회적으로 표현하려니 긴박함이 살아나지 않는다.  직접적인 우리말 표현으로 전환해 본다.)

한마디로 똥이 마려웠다. 그것도 매우 화급했다.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의아해하는 일행들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하고 클럽하우스로 돌아서는 순간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건강한 황금색의 '그놈' 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양이 엄청났다.  
당황스러우면서도 이상하게 배가 시원해지는 느낌도 있었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났다. 
하도 생생해서 혹시 진짜로 실수한 것이 아닐까 몸을 만져볼 정도였다.

그런데 이틀 뒤 또 이상한 꿈을 꾸었다. 이번엔 비와 물이었다.
창밖엔 억수 같이 비가 퍼붓고 집에 물이 새기 시작했다. 천장에서고 어디서고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아우성을 치며 물에서 허우적거리는데 아내가 흔들어 현실로 돌아오게 해 주었다.

왜 전에 없던 꿈을, 그것도 이렇게 이상한······? 나이 들었다는 징후인가?
아내와 꿈 이야기로 킬킬거리다  인터넷 해몽을 찾아보니 똥도 빗물도 뜻밖의 행운이나 횡재수를 의미한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밀물 땐 없어지고 썰물 땐 드러나는 땅 한 뙤기는커녕, 깡통 주식 한 장도 없는 데다가, '알고 보니
재벌가의 혈육'이었다는  막장 드라마식 출생의 비밀 따위가 있을 리 없으니 횡재수란 해몽은 '개몽'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마른하늘에 벼락을 맞았다가 살아날 확률'이라는 그것?

두 번이나 이어진 횡재수의 꿈에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있는 복권 판매점이 유별나게 눈에 들어왔다.
며칠이 지나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번호 3개가 일치하여 5천 원이 맞았다.
아내는 "꿈속에서 그 고생을 하고 얻은 횡재수가 겨우 본전이라니. 당신 재물운은 '무노동 무임금'이야." 하며 놀렸다.


보통은 금요일 오후에 로또를 산다

시가 안 되는 날은 몇장 더 산다

나는 언젠가 내 밭에서 기른 근대로 국을 끓여 먹거나
머잖아 이웃에 대하여 관후(寬厚)를 보이게 될 것이다

로또는 인류와 동포를 위한 불패의 연대이고
또 그들이 나에게 주는 막대한 연민이다

나는 부자가 되면 시 같은 건 안 쓸 작정이다

어쩌다 그냥 지나가는 금요일은 불안하다
누군가에게 이 세계를 그냥 줘버리는 것 같아서다
그리고 은밀한 곳에서 그것을 맞춰보고는

​아, 나는 당분간 시를 더 써야 하는구나 혹은
아, 시도 참 끈질긴 데가 있구나 하며


다시 금요일을 기다린다

-이상국,  「금요일」-


미국에 주재를 할 때 복권 관련한 해프닝이 있었다.
미국 복권은 당첨자가 없어서 이월되면 가끔씩 당첨 금액이 수천 억에 달해 화제가 되곤 한다.
하루는 주말 아침 골프를 끝내고 사람들과 클럽하우스에서 맥주와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눌 때
한 사람이 복권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메가(Mega)라는 복권 당첨금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그는 당첨될 확률이 아무리 비현실적이더라도 일단 복권을 사야 그나마라도 생기는 거 아니겠냐고
모두들 한 장씩 사자고 부추겼다. 마침 골프장 가까운 상가에 복권 판매점이 있었다. 

 "혹시 추첨 뒷날 내가 회사에 안 나오면 당첨된 걸로 알고들 있으소. 며칠 잠수를 탔다가 신변 정리 좀 하고 
보디가드와 변호사 대동하고 당첨금 받으러 갈 거니까. 우리 회사는 장돌뱅이 씨한테 그냥 거저로 줄게요."
보디가드는 이해가 되지만 변호사는 왜 대동하는 걸까 물으려는데 그가 선심을(?) 썼다.

며칠 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복권 때문이 아니라 미국 주재 초기라 미국 시민권자로 오랫동안 회사를
운영해 온 그에게 물어볼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의 회사 멕시칸 직원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의아해했다. 연락도 없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지? 하다가,  '혹시······ 진짜 복권 당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내내 연락 두절이던 그가 정오가 지나서야 전화를 걸어왔다. 평소 그는 일 때문에 가족들과 떨어져 지냈다.
간밤에 일이 있어 프리웨이로 두 시간 반 정도 거리의 LA 집에 갔는데 아침에 깜빡 휴대폰을 두고 나왔다는 것이다.
출근 도중에 차를 돌려 다시 갔다 오느라 그렇게 되었다는, '복권은 내 팔자에 개뿔'이라는 허무개그였다.

주재를 마치고 귀국한 뒤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미국 복권 당첨 금액이 조(兆) 단위까지 올라가 한국에까지
요란한 적이 있었다. 그에게 연락을 했더니 그때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가 잠적하면 당첨된 줄 알고 장돌뱅이님 우리 회사 인수하러 태평양 건너오소."

그 뒤 몇 년 사이 나는 백수가 되었지만, 그는 '한시바삐 때려치워야 할' 사업을  여전히 넘겨주지 않고 있다.
시인에게 복권보다 시가 끈질기듯이 우리에겐 대박보다 벌써 수십 년을 이어온 생활이 더 끈질긴 것이다.

그래도 아직 나에겐 힘들게 당첨된 5천 원짜리 복권이 있다며 위대한 장군의 비장함을 모방해 본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새 것으로 바꾸어 다시 '인류와 동포를 위한 불패의 연대'도 공고히 하고
고급진 백수가 되는 희망도 가꾸어 보아야겠다.
이번엔 거센 장맛비를 맞으며 동시에 '자연의 부름'에도 응답하는  '일타쌍피'(?)의 꿈을 꾸면 가능성이 높아질까?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하나이다  (0) 2021.12.24
동지 팥죽  (0) 2021.12.23
눈이 온다  (0) 2021.12.18
3차 백신과 한파주의보  (0) 2021.12.17
앞니 빠진 새앙쥐  (0) 2021.12.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