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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대박의 꿈, 현실이 되다

by 장돌뱅이. 2021. 12. 28.

한 신부의 미사 강론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해외에서 주재할 때의 경험담이라고 했다.
한 번은 한국에서 노년의 여러 선배 신부들이 방문하여 행사와 지역 안내를 맡게 되었다.
며칠에 걸쳐 응대를 하다보니 피곤함도 쌓이고 사소한 일에도 '내가 뭐 시다바린가' 하는 식으로
미묘하게 감정이 흔들리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큰일 없이 그럭저럭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귀국을 하는 날이 다가왔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선배들은 십시일반으로 모은 약간의 돈을 '고맙고 사랑한다'는 덕담과 함께 건네주었다.
돈봉투를 받는 순간 신부는 그동안 있었던 약간의 서운함조차 눈 녹듯 사라지고 '아! 선배님들이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는 감동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성직자가 고백하는 세속적인(?) 이해타산에 성당 안은 웃음이 가득했다.
신부는 이 자리에 참석한 남편들은 각자의 아내에게 말로만 하지 말고 반드시 '명품' 가방과 함께
사랑을 전하라고 덧붙여 여성 참석자들의 전폭적인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강론의 요지는 사랑은 표현해야 한다는 것,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날에 딸아이가 집에 좀 다녀가면 좋겠다는 연락을 주었다.
불과 이틀 전에 다녀오기도 한데다 무엇보다 크리스마스 날은 가족들끼리만 지내온 터라 조금 의아스러운
요청이었지만 손자친구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딸아이 집에 도착하여 커피를 마시며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받은 손자들의 반응담을 들었다.

제법 시간이 지난 후에 딸아이가 못 참겠다는 듯 크리스마스트리 밑에서 무엇인가를 집어 들었다.
"아! 눈썰미 있게 이건 뭐냐고 물을 줄 알았더니 ······"  
그리고 직육면체로 포장된 것을 선물이라며 우리에게 내밀었다. 부피에 비해 좀 묵직했다.
"뭐지? 혹시 5만 원권 지폐?" 나는 너스레를 떨며 포장을 열었다,
신형 휴대폰이었다. 그것도 아내와 나에게 각각!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크리스마스 전에 택배를 받아 주려고 했는데 늦어졌다고 했다. 
아내와 나의 기종은 5년 전 모델이라 배터리가 빨리 닳아서 그러지 않아도 교환을 염두에 두고 있던 참이었다.

신부의 강론은 옳았다. 새 전화기를 만지며 나도 '아! 딸아이와 사위가 우리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고
평소보다 강도가 센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것이 뇌물(?)에 약하고 쪼잔한 평소 나의 성품 탓만은 아닐 것이다.

종은 울려야 종이고, 노래는 불러야 노래이며,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고 하지 않던가.
'말로 안 해도 내 마음 알지?'라고 말할 수 있지만 표현하지 않는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독심술은 존재하기 어렵다.
세상과 사랑의 '등뼈'는 표현과 행동이라고 믿는다.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깨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
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

논에 물을 대주듯
상처에 눈물을 대주듯
끝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
한 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 정끝별, 「세상의 등뼈」 -


길몽을 꾸고 나서 복권을 샀다가 별 볼 일 없었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 * 이전 글 참조 : 대박의 꿈 )
하지만 투덜거림도 잠시 며칠이 지나지 않아'대박의 꿈'은 그렇게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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