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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고

by 장돌뱅이. 2021. 12. 31.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올리브 키터리지(OLIVE KITTERIDGE)』는 바닷가 마을 크로스비에 사는
주민의 이야기 -
노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 - 를  열세 편의 단편에 나누어 담았다.

마을 사람들은 얼마쯤은 풍족하고 얼마쯤은 부족했으며 또 행복한가 하면 그만큼 불행해 보였다.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지만,
행과 불행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친 인생과 가정은 있을 수 없겠다.
내겐 어떤 집이든 문지방 안쪽의 속내 사정은 대개 비슷하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그래서 60대 후반의 올리브 키터리지(와 남편 헨리 키터리지)가 소설의 중심이긴 하지만,
각각의 삶을 나누어 기억하기보다는 마을 전체를 한 사람이나 한 가정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소설에서 무엇보다 나를 찔리게 했던 건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였다. 
부모는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베풀며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식의 삶에 개입하고 싶어 한다.
부정적일 때도 있겠지만 세상에 그것만큼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순수한 행위는 없을 것이다.

"갑자기 삶에 대한 탐욕이 솟구쳤다. 올리브는 앞으로 몸을 숙여 창밖을 내다보았다. 다정하고 연한 구름,
파란 하늘, 풋풋한 연둣빛 들판, 광활한 바다. 높은 곳에서 보니 모든 것이 경이롭고 경탄스러울 뿐이었다.
희망이 무엇인지 기억났다. 이것이 희망이었다. 저 아래 배들이 반짝이는 물을 가르듯이, 그녀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곳을 향해 비행기가 하늘을 가르듯이, 삶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내면의 울렁임이었다.
올리브는 아들의 인생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이하 " "는 소설 인용문) 

그에 비해 대부분의 경우 자식은 늘 무심하고 시큰둥하다.

 "괜찮아요." 부모가 전화를 하면 아들은 말했다. "괜찮아요." (···) "아뇨, 지금은 말고요." 헨리와
올리브가 비행기를 타고 가겠다고 하자 크리스토퍼가 말했다. "지금은 때가 안 좋아요."

크리스토퍼에게서 자식이었던 나의 모습을 본다.
나 역시 어머니에게 그다지 자상하지 않았고 어머니가 내 삶에 끼어들 여지도 그다지 많이 주지 못 했던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후회라지만, "너무 늦었을 때야 뭔가를 깨닫는 것이 인생"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잘못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전 글 참조 :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


80년 대 많은 집회 현장에서 다양한 '노가바'로 불려진 "늙은 군인의 노래" 3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 내 평생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70년대 말 친구들과 즐겨 이 노래를 부를 때  나는, 아마 우리는,  '금강산 구경'이란 의미에만 주목했을 뿐 
'우리 손주'에는 일말의 관심도 두거나 자극을 받지 않았으며, 실감도 날 리 없었다.
언젠가 나의 팔에 "검버섯이 피고, 혈압약 때문에 오줌이 자주 마려워져서 커피도 조절해서 마시게 되리란 걸,
인생에 갑자기 속도가 붙고 그러다 보면 인생이 어느덧 훌쩍 지나가 버려 정말로 숨까지 가빠진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던 ,
"아침이고 점심이고 저녁이고 그냥 노닥거리고 다닐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걸" 알지 못했던, 젊은 시절이었던 것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손주의 손목은 잡고 걷지만 아쉬워지는 건 금강산 구경에 앞서 삐걱거리기 시작한 몸이다.
노쇄와 질병은 자신들만의 계획으로 어느 날 불쑥 찾아와 친구 되기를 강요한다.
 "복잡하고 기나긴 식사가 끝나고 이제야 근사한 디저트가 나올 것만 같"은 시기에 디저트 대신 온갖 약을 내놓는 것이다. 

언젠가 "돌멩이를 집어서 힘을 조절하여 바다에 던질 여력"조차 없어지는 순간이 오겠지만, 어쩌랴! 견딜 수밖에!
삶은 원래 견디는 것 아니었던가.
"매일 운동을 해서 더 오래 살게 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도, "죽을 땐 제발 숨이 금세 끊어졌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면서도,   
"염병할 만물박사 며느리 같으니라구" 투덜거리면서도, 자식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빈둥지 증후군'을 견디고,
"내 할머니라고 해서 내가 꼭 당신을 사랑하란 법은 없잖아요" 하는 손자 녀석의 '막장'도 견디며, 
병으로 쓰러진 남편에게 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당신 곁에 있어요"하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밤에 우리 영혼은(OUR SOULS AT NIGHT)』속  홀로 사는 70대 여인 애디는
이웃집  홀아비 루이스를 찾아가 말한다.
 '괜찮으시면 언제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잘래요? 섹스를 하려는 것은 아니에요. 섹스는 이미 흥미를
잃은 지 오래고 잠들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는 거예요. 밤을 견뎌보려고 그래요.'
육체의 노화보다 두려운 것은 관계의 소멸이다.

젊은 시절과는 "다른 길. 이제는 그 다른 길에 익숙해져야 한다." 생의 모든 순간을 젊은 시절처럼 새로운 것에
흥분하거나 상처받을 수는 없다. 삶의 어느 순간에도 파도는 있고, "인생은 뼈와 마찬가지로 서로 얽혀 
직조되며 어긋난 뼈는 치유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흉터가 남을지도 모르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고, 흉터를 내 살로 어루만지는 것이며, "수많은 순간이 그저
찰나가 아니라 선물임을 아는 것"이다.

누군가 (신영복 선생님?) 바위만 한 크기의  슬픔을 없애기 위해 바위만한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작은 모래알만 한 기쁨으로도 큰 슬픔을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젊었거나 늙었거나 절실한 삶의 경구가 아닐 수 없다.

"올리브는 생이 그녀가 '큰 기쁨'과  '작은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큰 기쁨은 결혼이나 아이처럼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위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해류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작은 기쁨도 필요한 것이다. 브래들리스의
친절한 점원이나,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있는 던킨 도너츠의 여종업원처럼. 정말 어려운 게 삶이다."

"다른 모든 심장처럼 언젠가는 멎을 심장. 그러나 그 '언젠가는' 지금 이 자리에 없다."
하지만 사랑해야 할 것은 늘 눈앞에 있다.  
"당신은 선택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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