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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수수께끼와 마술의 한 해

by 장돌뱅이. 2021. 12. 29.

형과 동생


올해 손자친구와 함께 한 놀이에 가장 두드러진 주제는 단연 수수께끼와 마술이었다.
수수께끼는 오래 전부터 자주 해왔지만 올해부터는 친구가 난센스 문제도 감을 잡기 시작했다는 점이 다르다.

"물은 물인데 무서운 물은?" 
"???"
한참을 고민하다가 친구는 모르겠다고 했다.
"괴물!"
답을 알려주자 친구의 거센 항의가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물이라고 했잖아요! 괴물을 마실 수 있어요?"
그러던 친구가 이젠 어설픈대로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감은 감인데 먹는 감이 아니고 노는 감은?" 

친구를 위해 수수께끼를 모으다 보니 기발하고 재미난 것도 많았다.
- 겉은 보름달이고 속은 반달인 것은? (귤)
- 동굴 속에 들어갈 때 짐을 싣고 들어갔다가 나올 때는 빈몸으로 나오는 것은? (숟가락)
- 더울 땐 옷 입고 추울 땐 옷을 벗는 것은? (나무)
- 앉으면 보이고 서면 보이지 않는 것은? (발바닥)
- 얼굴은 여섯이고 눈은 스물 하나인데 잘 뒹구는 것은? (주사위)

반면에 주변 환경에서 사라져 수수께기로 낼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 빨랫줄, 장독, 우체통, 지게, (다이얼) 전화기, 등등.


마술은 코로나로 친구와 대면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무얼 할까 생각하던 끝에 시작하게 되었다.
50+센터에서 하는 마술 영상 강좌를 몇 차례 수강하였다.
본격적인 고난도의 기술보다는 간단한 마술에 입히는 이야기에 중점을 두는 과정이었다.

사람들의 수강 이유는 다양했다. 어린이들 대상의 수업에 서먹한 분위기를 깨뜨리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아이스 브레이킹 일환으로, 혹은 각종 모임에서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서나  나처럼 손자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등등.

가장 기억에 남는 수강 동기는 치매에 걸린 아내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강좌가 끝날 무렵 효력이
있었느냐는 물음에 아내가 마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듣는 사람을 슬프게도 하고 뭉클하게도 만들었다.


아무튼 마술에 대한 친구의 호응은 대단했다. 나를 기다리는 것인지 마술을 기다리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수업에서 배운대로 마술과 스토리를 함께 하려고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친구는 스토리는 건성건성 뒷전이고 마술에 더 매달렸다.
내게 마술의 해법을 알려달라고 급하게 종용하고 알게 되자마자 식구들을 대상으로 시연을 했다.
그리고 자기가 마음에 드는 사람 순으로 해법을 알려주는 특혜를 베풀었다.

 

 


가장 최근에 한 마술은 "LOVE & HATE'였다. 
HATE라는 글자와 인상을 찌푸린 그림이 있는 카드가 어느 순간 LOVE와 하트로 바뀌는 카드였다.
나는 친구가 일찍 자고 동생과 잘 지내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를 만들어 보았다.
(친구는 위 사진처럼 동생과 사이좋게 어울리는 시간보다는 동생에 대한 시샘과 아웅다웅의 시간이 더 많다.)

"철수는 지난 밤에 늦게 잠을 자서  엄마가 아침에 깨우자 피곤했다. 그런데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동생 영수를 보자 짜증이 나서 "이거 내 거야" 하고 확 빼앗았다. 형 때문에 억울해진 영수는 평소에 예뻐하던
놀이터 고양이가 다가오자 "저리 가!"하고 화풀이를 냈다. 고양이는 영수를 피해 저만치 달아나다가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는 참새들에게 발톱을 새우며 소리를 질렀다. "여기서 놀지마!" 참새들은 놀라
나무 위로 날아 올라갔다. (이야기를 하며 HATE 카드를 한 장 한 장 펼친다.)

한참 뒤 철수는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장난감을 내주었다. 동생 영수도 고양이에게 다가가 사과를 했다.
"내가 잘못했어." 그 말을 들은 고양이도 마음이 풀어져 나무 위의 참새들에게 말했다.
"내려와서 같이 놀자. 미안해." (LOVE로 바뀐 카드를 보여준다.)"


영악한 친구는 어느 순간 이야기의 내용이 자신의 행동을 꼬집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는지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임의대로 이야기를 - 4명의 친구들끼리 서로 다투다가 화해한다는 내용으로 바꾸었다.

친구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다만 행동이 마음을 따라가지 않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어른들도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자신도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어린 친구에게 도덕적 잣대와 훈계를 늘어놓는 것은 꼰대의 특성이다.
친구가 만든 이야기가 더 좋다고 엄지를 세워 주었다.


내가 지은 이야기는 나태주 시인의 「여름의 일」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골목길에서 만난
낯선 아이 한테서
인사를 받았다

안녕!

기분이 좋아진 나는
하늘에게 구름에게
지나는 바람에게 울타리 꽃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문간 밖에 나와
쭈그리고 앉아 있는
순한 얼굴의 개에게도 
인사를 한다

너도 안녕!



새해에는 나부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가까운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인사를 자주, 그리고 먼저  건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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