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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좀비 영화와 시

by 장돌뱅이. 2022. 2. 8.


좀비는  아이티의 부두교의 전설에서 유래되었으며 미국 저널리스트인 윌리엄 시브룩(William Seabrook)이 그의 저서 『The Magic Island』에서 이를 소개하면서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영화나 드라마, 소설, 게임 등의 소재가 되었다 (다음백과 중에서).

넷플릭스의 『지금 우리 학교는』 한 과학 선생이 아들을 위해 만든 좀비 바이러스가
학교에 전체에 퍼지고 급기야 도시 전체를 집어삼킨다는 내용의  영화다. 

영화에는 학교 폭력 문제와 거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학교 조직, 대입 문제,
임대아파트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가해지는 편견, 청소년 성문제 등이 나오기도
하지만, 개개의 문제가 짜임새 있는 구조 속에 얽혀있지 못하고 돌발적이거나
일회성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어른들을 믿지 않는다'는
여주인공의 말이 다소 생뚱맞아 보이고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 이유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는 몇몇 학생들이 좀비들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천신만고를 보여주는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하다. 
모든 영화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영화가 재난·공포·액션영화라는, 끔찍한 폭력과 피와 아우성이 가득한,
(내게는) '킬링타임'용이었다는 뜻이다.


시인 이동순은 '좀비에 관한 연구'라는 연작 시를 썼다.
시인은 "우리 내부의 모든 부정적 악습, 가치와 균현 감각의 마비 상실, 또 그로 인한
중심 이탈 때문에 생겨난 각종 우려"를 좀비(현상)으로 보았다. 
직설적인 어법의 좀비 연작이 앞선 그의 시와 같은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좀비'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기회는 되었다.


수십 년
지구 행성 머물며
참으로 많은 좀비 겪었네
가장 분명한 사실은 그 좀비
우리와 같은 호모사피엔스라는 점
주식과 몇 군데 부동산
세속적 명예 보잘 것 없는 직책
거기에 생애 걸고
허겁지겁 달려가는 무수한 좀비
그 속에 끼어서
나도 하나의 좀비로 살았네
잠시 방심한 채
그 좀비 인간으로 착각한 채
그 좀비 인간으로 착각한 채
우정 존경심
사랑과 그리움 한껏 쏟은 적도 있었지
하지만 그는 끝내 부활한 시체
화폐에 영혼 붙잡힌
가련한 좀비
자기밖에 모르는 독선적 이기적 좀비
이 좀비 나라에서 버티려면
나도 좀비 되어야 하나

- 이동순, 「좀비들의세상 - 좀비에 관한 연구 1」-


영화 속의 좀비는 심장은 멈추고  따뜻한 피는 돌지 않지만 늘 허기와 갈증을 느끼며
맹렬하게 움직인다.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경쟁·속도·효율·자본의 논리와 닮아 있다.
나는 그것에 거부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것들이 절대 변하지 않고 죽지도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뒤쪽으로는 좀비의 폭력과 아우성에 시치미를 떼거나 야합을 하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행기유치(行己有恥) 라 했던가. 자주 부끄러움을 돌아보며 살 일이다.


거울을 보라
자주 거울을 들여다 보라
내 얼굴이 혹시 좀비로 바뀌어 가는지
살피고 또 살펴볼 일이다.

- 이동순, 「좀비는 누구인가」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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