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다른 곳에서 볼 일을 보고 당산역 근처에서 아내와 합류하여 점심을 했다.
날이 더워 음식 나오기 전에 맥주부터 주문을 했다.
"낮술은 백수와 신선만이 할 수 있다." 은퇴한 후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흰소리 건 어쩌건 낮에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은 은퇴 전과 후의 확실한 구분이 된다. 낮술로 신선의 경지에(?) 이른 김에 식사를 마치고 신선이 노닌다는 이름을 가진 한강 선유도(仙遊島)로 갔다.
선유도는 조선시대까지는 섬이 아니었다.
안양천이 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솟은 봉우리(仙遊峯)였다.
겸제 정선의 그림을 통해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우뚝한 봉우리 아래 작은 민가들이 숨은 듯 기대어 있고 번듯한 기와집도 한 채 보인다. 그 앞으로 빈 나룻배 두 척이 떠있고 한 척은 내를 건너 반대쪽에 정박해 있다. 막 배에서 내려 넓은 백사장을 빠져나가는 한 무리의 일행이 보인다. 하인에게 견마를 잡힌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양반과 짐을 바리로 실은 말(나귀), 등짐을 진 도 다른 하인도 있다. '양화(楊花)'나루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커다란 버드나무들이 한쪽에 숲을 이루었다. 멀리 한강 위에는 돛단배가 두 척 흐르고 멀리 남산이 검은 실루엣으로 떠있다. 진경산수화라 해도 겸제의 작가적 해석이 들어갔을 테지만 사람과 마을과 자연이 어울린 풍경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오래전부터 한강은 온갖 물자와 사람을 나르는 중요 교통로였다. 물길을 따라 마을들이 터를 잡았고 수많은 나루들이 생겨났다. 그중에서도 광나루(廣津)·삼밭나루(三田渡)·동작나루(銅雀津)·노들나루(露梁津)·양화나루(楊花津)는 한강의 5대 나루로 꼽혔다. 선유봉 아래 강변에는 서울로 가는 큰 나루와 지류인 안양천을 건너는 작은 나루가 있었는데 모두 양화나루라 불렀다. 겸제의 그림은 작은 양화나루를 그린 것이다.
현대화로 다리가 생기고 나루가 없어지면서 한강은 우리 생활에서 멀어져 갔다. 그저 흐르거나 저만치 배경으로 있을 뿐이다. 그 곁을 걷거나 달리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복되지만 한강을 우리 삶에 좀 더 가깝게 끌어올 수는 없는 것일까? 옛 그림이나 이야기 속에 활기찼던 한강에 비해 오늘의 한강은 조금은 외로워보이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선유봉은 훼손되기 시작했다. 선유봉에서 암석을 채취하여 한강 제방을 쌓는데 썼다.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1965년에 양화대교, 1978에는 정수장이 건설되었고 선유봉 일대는 옛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후 20여 년간 시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던 정수장이 이전하면서 공원화가 계획되었고 그 결과 2002년 7월 오늘의 선유도공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공원 안내판 설명에 따르면 "선유도공원은 폐기된 공장 시설을 재활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례로서 환경 재생 생태 공원이자 '물의 공원'이라"고 한다.
평일의 선유도공원은 한가했다. 연두색에서 초록으로 짙어가는 나무들과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강변 소음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난 적요로움이 가득했다. 우리는 이리저리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길을 선택하며 공원 안에서 '안전한 방황'을 즐겼다.
선유도공원의 정수장은 "약품침전지를 재활용한 수생식물원과 시간의 정원을 비롯하여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 지붕을 들어내고 기둥을 남겨 만든 녹색 기둥의 정원, 환경 물놀이터 등 다양한 재생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정수장 수로에는 올챙이들이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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