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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청계천 걷기

by 장돌뱅이. 2022. 6. 12.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가 말했다.

"가장 서글픈 사실 중의 하나는, 사람이 하루에 여덟 시간씩 매일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계속 밥을 먹을 수도 없으며, 또 여덟 시간씩 술을 마실 수도 없으며, 섹스를 할 수도 없지요. 여덟 시간씩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밖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토록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이지요."

내가 여덟 시간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책 읽기와 걷기다. 물론 이 둘도 여덟 시간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할 수는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들기는커녕 즐겁다.
포크너가 말한 일의 범주에 드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어디에 속하건 백수인 나와 아내로서 독서와 걷는 일은 밥 먹는 것과 같은 일상이다. 

아내와 동대문에서 만나 청계천을 걸었다.
먼저 쉐이크쉑에서 버거와 감자튀김으로 점심을 했다.
미국 뉴욕을 여행하면서 처음 경험했던 SHAKE SHACK. 
이젠 서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맛도 좋지만 아내와 내겐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전태일 상이 있는 버들다리에서 청계천으로 내려섰다.
우리 사회는 아직 전태일에게 진 빚을 다 갚지 못했다.
민주화는 결국 그의 삶과 생각을 구체화하는 과정일 것이다.

청계천 하류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3km 정도를 걸으니 청계천박물관이 나왔다.

청계천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판잣집 체험관이라는 곳은 6-70년대의 교실과 다방 등의 모형을 만들고 그 시절의 소품을 늘어놓은, 시쳇말로 '추억팔이'의 공간이었다. 굳이 안에 들어갈 것 없이 겉에서 한 번 보는 것으로 충분해 보였다.

청계천박물관은 2005년 9월에 문을 열었다. 옛 청계천의 모습부터  2003년 7월부터 2년 2개월 동안 진행된 복원 공사와 복원 이후의 모습을 전시한다. 4층에서부터 복도를 따라 내려오면서 관람할 수 있어 편리하다.

청계천은 1955년 광통교 상류 약 136미터를 복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1977년까지 몇 차례의 공사를 거쳐 청계 8가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 또 청계고가도로 건설 공사가 1967년부터 시작되어 1971년 8월 15일 완공되었다. 시청의 문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시원하게 뚫린 복개도로과 고가도로 위에는 자동차가 쏜살같이 달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서울의 가장 부끄러운 곳이었던 청계천은 근대화·산업화의 상징으로 서울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위 사진 : 70년대 청계천 변의 판잣집(출처 : 청계천박물관)

20여 년이 지난 뒤 시청 문서는 이렇게 바뀐다.

더 이상 청계천을 서울의 자랑거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서울에서 가장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의 대명사가 되었다. 청계고가도로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는 근대화·산업화의 상징이 아니라 개발시대의 무지가 낳은 흉물로 인식되고 있다.

복개공사를 두고 '위업'을 자랑하던 때와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사회적 인식 변화와 시대적 요청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뒤바뀐 관점은 청계천 복원이라는 거대 토목 공사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물론 거기에 언제나 그렇듯 정치적 의도가 작용했다. '개발시대'의 종언을 알린다는 청계천 복원 공사가 정작 구 시대의 상징적 방식처럼 단 기간에 밀어부치 듯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아이러니하다. 

어쨌거나 복원공사는 이루어졌고 콘크리트 구조물 사이로 인공하천일망정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산다. 콘크리트로 덮여 있던 과거보다 나쁘지 않지만 복원의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정치· 환경· 자연 ·문화에 대한 여러 질문과 논쟁들이 공사의 완공과 함께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청계천과 그 일대는  "보고(景) 놀고(遊) 산다(場)"는 소비 공간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장소가 그렇듯 전체 서울과 관계 속에 존재하는 한 부분이고, 사람들이 사는(生) 터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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