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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설악산 일대1

by 장돌뱅이. 2022. 6. 17.

≪설악산자생식물원≫에서

서울에서 속초까지 장거리 운전을 할 때
그를 옆에 태운 채 계속해서
앞만 보고 달려간 것은 잘못이었다
틈틈이 눈을 돌려 북한강과 설악산을 배경으로

그를 바라보아야 했을 것을
침묵은 결코 미덕이 아닌데 ······

긴 세월 함께 살면서도 그와
많은 이야기 나누지 못한 것은 잘못이었다
얼굴을 마주 쳐다보거나
별다른 말 주고 받을 필요도 없이
속속들이 서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해를 곧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
여름 바닷가에서 물귀신 장난치고

첫눈 내린 날 살금살금 다가가서
눈 한 줌 목덜미에 쑤셔넣고 깔깔대던
순간들이 더 많았어야 한다
하다못해 찌개맛이 너무 싱겁다고 음식 솜씨를 탓하고

월급이 적다고 구박이라도
서로 자주 했어야 한다
괜찮아 워낙 그런거야 언제나
위안의 물기가 어린 눈웃음
밝은 목소리

부드러운 손길
포옹할 수 없는 기억

속으로 이제는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을

-김광규, 「서울에서 속초까지」-

2명의 친구와 부부 동반하여 6명이 설악산 일대를 여행했다.


친구 중 하나는 은퇴 후 낚시에 맛을 들여 이젠 제법 '꾼'의 경지에 오른 듯했다. 철마다 어느 바다에서 어떤 해산물이 나는지 꿰고 있었고 거기에 맞는 낚시와 미끼를 준비할 줄 알았다.
그동안 그가 바다에서 잡아 냉동고에 넣어두었던 해물을 쿨러에 담아 왔다.
나는 '메인 셰프'라는 난데없는 감투를(?) 쓰고 '갈고닦은' 솜씨를 총동원하여 상을 차렸다.
그리고 철없던 까까머리 시절로 돌아가 실없는 이야기와 장난으로 밤이 늦도록 떠들며 술을 마셨다.
아내들도 함께 분위기를 띄웠다. 일상의 경직된 근육과 감정은 나른하게 풀어졌다. 오랜 세월을 지나 멀리 달려와 버린 우리에게 침묵은 미덕일 수 없고 사랑은 이해의 지평을 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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