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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다시 발밤발밤하다

by 장돌뱅이. 2022. 5. 16.

지난 2년간 아내가 지하철 교통비로 지출한 금액은 2,500원이었다. 나도 비슷했다. 친구 모임은 한번도 하지 않았고 수영 강습과 다른 강좌 수강도 일체 중단하거나 영상수업으로 대체했다. 우리도 우리지만 그보다 혹시나 우리 때문에 손자들에게 코로나가 옮겨질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첫째 손자가 먼저 유치원에서 걸려와 온 식구들에게 퍼트렸다. 변종 코로나가 나오면서 증상이 이전보다 약해진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딸아이네 식구들이 코로나와 싸우는 동안 아내와 나는 음식을 만들어 아파트 문 앞에 갔다 놓았다. 처음 음식을 놓고 돌아설 땐 영문도 모르는 어린 손자들이 문 안쪽에서 병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에 콧날이 시큰하기도 했다.

아무튼 고생한 덕에 모두 슈퍼 항체를 보유하게 되었다고 하니 아내와 나는 책임에서(?) 자유로워졌고 코로나 시대의 일차적인 목표도 달성한 셈이다.
이제 미루어두었던 외출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지하철을 타고 이곳저곳으로 가 걷기를 해볼 작정이다. 지난번 서리풀공원에 이어 이번에는 서울로7017과 만리동, 중림동을 걸었다.


서울로7017은 70년대 준공된 서울역 앞 고가도로를 공원(보행로)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서부터 서울역을 지나 만리동 쪽으로 걸었다. 길이는 1km 남짓으로 길지 않지만 높다란 빌딩을 사이를 지나는 공중 길을 걷는 맛이 색달랐다. 야경도 좋다고 하니 잠 안오는 무더운 여름밤에는 나와 볼만 하겠다. 여러 가지 나무들이 이름표를 단 채 커다란 화분에 담겨 서 있고, 길 마지막 부분에는 5월의 꽃인 작약과 장미도 피어있었다.

작약(함박꽃)


서울로7017과 만리재로를 잇는 200m의 거리에는 세련된 분위기의 식당과 카페 등이 줄지어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만리단길'이라고 부른다. 한 때 이름난 '먹자' 거리였던 이태원의 경리단길을 흉내낸 것이다. 길은 깔끔하게 다듬어져 걷기에 편했다. 가게마다 길 쪽으로 잇대어 낸 처마 아래에는 북적이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어 보였다. 지인에게 만리동의 놀라운 변신이라고 사진을 보냈더니 '경리단길'처럼 쇄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문자가 왔다.


만리단길 끝에 있는 카페 "더하우스1932"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마시며 잠시 쉬어갔다.
좌식 자리에 앉아 푹신한 쿠션에 기대고 아내와 나누는 한담에 마치 먼 휴양지로 떠나온 것 같았다.

중림동에 있는 약현성당은 1892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라고 한다.
붉은 벽돌로 쌓아 올려진 성당은 아담하면서도 당당한 멋이 있었다.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어 성당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어 바깥쪽으로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자비하시니 자비로워라."

친절과 자비는 가장 위대한 종교라고 했다.
성당의 옆쪽 문에 붙어있는 주련에 문득 부끄러워진다. 별로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은 친절의 말 한 마디나 측은지심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정당한 분노도 그런 세상에 기여를 한다고 내심 우겨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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