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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소나기

by 장돌뱅이. 2022. 8. 6.

"흙냄새가 올라오는 거 같네."
갑작스럽게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를 보며 아내가 말했다. 
어린 시절 후드득 소리와 함께 소나기가 쏟아지면  마당에서 구수한(?) 흙냄새가 피어오르곤 했다. 하지만 흙이라곤 보이지 않는 포장된 대지 위에 들어선 높은 아파트까지 그런 냄새가 올라올 리는 없겠다.
아내와 착각을 공유하며 요란한 비가 오는 거리를 같이 내려다보았다.

흙냄새는 착각이지만 비 온 뒤 숲에서 나는 싱싱한 냄새와 초록의 색감은 지금도 '레알'이다.
축축하면서도 어딘가 달짝지근한 맛도 풍기는 공기를 호흡하며 걸었다. 

숲의 나무들 서서 목욕한다 일제히
어푸어푸 숨 내뿜으로 호수 쪽으로 가고 있다
누렁개와 레그혼, 둥근 지붕 아래 눈만 말똥말똥
아이가, 벌거벗은 아이가
추녀 끝에서 갑자기 뛰어나와
붉은 마당을 씽 한 바퀴 돌고 깔깔깔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와 몸을 턴다
점심 먹고 남쪽에서 먹장구름이 밀려와
나는 고추밭에서 쫓겨나 어둔 방 안에서 쉰다
싸아하니 흙냄새 들이쉬며 가만히 쉰다
좋다

- 이면우,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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