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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고우영 만화 읽기 2 - 『십팔사략(十八史略)』

by 장돌뱅이. 2022. 8. 8.

은퇴를 한 뒤 두서없이 중국 고전들을 읽는다.
그런데 헷갈리는 것 중의 하나가 시대별 나라 이름이다.

하(夏) · 상(商) · 주(周)에 이어 춘추(春秋)와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이르면 이른바 춘추오패(春秋五覇)와 전국칠웅(戰國七雄)만으로 어지러워지기 시작한다. 이름도 비슷비슷하거니와 이 나라가 중국 대륙의 어디쯤에 있었을까 생각하면 더욱 어려워진다.

다행히(?) 진(秦)이 통일해서 한 번에 정리가 되는 듯 하지만 한(漢)에 이어 다시 삼국시대로 나뉜다. 삼국시대야 그래도 조조와 유비의 『삼국지로 익숙하다. 하지만 그건 한족들 이야기고 북방 민족들이 등장하면서 오호십륙국(五胡十六國)이니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니 오대십국(五代十國)이 등장하면 이름만으로 너무 어려워 포기를 하게 된다.

물론 남의 나라 역사를 세세히 알 필요는 없겠다.
다만 중국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이고 고전을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니, 그 역사에 대해서 개략적인 흐름은 알아 두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자주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서시, 왕소군, 우희, 초선, 양귀비 같은 미인들이나 여태후, 풍태후, 측천무후 같은 이례적인 옛 여성 권력자들에 대한 야담도 시대적인 맥락 속에서 이야기하면 훨씬 이해가 쉽고 내용도 깊이가 있어지지 않겠는가.


고우영의
『십팔사략(十八史略)』은 그래서 읽었다. 원래 『십팔사략』은 송말원초(宋末元初)에 살았던 증선지(曾先之)라는 사람이 중국 고대시대부터 송나라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그는 당시에 존재했던 18종류의 역사서 중에서 사실(史實)이나 사화(史話)를 간략하게 요약 편찬했다. 다음 백과에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낮아 속서로 분류되지만, 쉽고 간명하여 중국 역사의 대요를 알기에는 적당한 입문서'라고 평했다.

책은 어떤지 모르지만 고우영의 『십팔사략』은 만화라 우선 속도감 있게 잘 읽힌다. 고우영 특유의 재치가 그림과 글 속에 종횡무진이다.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아는 많은 이야기들도 압축되어 정리되어 있어 유익하다.

숱한 왕조의 흥망과 영웅호걸의 부침은 흥미로운 이야기와 교훈을 주었지만 그 과정은 선혈이 낭자한 잔혹 드라마였다. 권력을 위해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역사의 촛점을 왕조 변천사에 맞출 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일일 것이다.
우리의 지난 왕조사도 그랬듯이.


『십팔사략』에서 왕조가 망하는 원인은 외침 이전에 대개 권력자의 무능. 무능을 감싸고 이용하는 환관과 외척 그리고 측근의 득세 같은, 어느 양반의 표현대로 준비된 '내부 총질'이었다. 국운이 기울어가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대개 상식적인 비판을 차단하고 백성들을 쥐어짜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권력 유지에만 급급하는 시정 잡배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불과 15년만 존재한 단명의 왕조도 있었다.

슬기로운 심장이여,
돌 속 흐르는 맑은 강물이여,
한번도 우리는 저 높은 탑 위 왕래하는
아우성소리에 휩쓸려본 적
없었나니.

껍질은,
껍질끼리 싸우다 저희끼리
춤추며 흘러간다.

- 신동엽, 「조국」 중에서 -

평소 권력을 소원하던 고대 그리스 다모클레스는 왕좌에 앉아 천장을 바라보는 순간, 한 올의 말총에 매달려 권좌의 정수리를 겨냥하고 있는 칼을 보고 소스라쳤다. 그 칼은 『십팔사략』에선 '십상시'와 친척, 자신들만의 영달을 위해 권력을 잡으려는 모리꾼들이겠지만 오늘날엔 깨어있는 시민들임을 우리는 가까운 역사를 통해 이미 수차례 경험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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