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손자친구의 방학

by 장돌뱅이. 2022. 8. 1.

손자친구의 방학.
부모와 함께 짧은 여행과 과학관 등을 다녀오고 마지막 2박 3일을 보내기 위해 우리 집으로 왔다.
늘 그렇듯 밤을 새워 놀겠다는 기세와 함께 가방 속엔 게임을 가득 채워 왔다. '도시의 마블'을 비롯해서 '우노', '개구리', '멘사' 게임 등. 아내와 나는 'GO FISH'와 'MINIANS' 게임 외에 마술 몇가지를 준비해 두고 '귀빈'의 방문을 기다렸다.

우리는 또 친구가 좋아하는 등갈비강정, 해물잡채, 단호박죽과 닭백숙에 피자(구매) 등의 식단도 짜 두었다. 더운 날씨를 무릅쓰고 가스불의 크기를 조절해가며 음식을 만든 노력은 친구의 엄지척으로 보상을 받았다. 친구가 음식을 먹고 엄지척을 하면 대단히 만족, 엄지를 수평으로 누이면 중간, 엄지를 아래로 내리면 다시는 식탁에 올리지 말라는 '엄명'이다.
우리가 준비한 음식은 모두 양손 엄지척을 받았다.

친구는 저녁나절에 좋아하는 킥보드와 그네를 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선 다시 게임을 이어갔다. 게임은 하다보면 진화를 하기 마련이어서 예상하지 않았던 빙고게임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이튿날엔 집 근처 놀이동산에 갔다.
해가 설핏해진 늦은 오후를 택했지만 여전히 더웠다.
그런데 더위 탓인지 사람들이 많지 않아 놀이기구를 마음껏 탈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

이날 친구는 후룸라이드에 꽂혔다. 다른 놀이기구를 몇 가지 타다간 돌연 "지금부터 집에 갈 때까지 후룸라이드만 타겠다" 고 선언했다. 덕분에 이제까지 딸아이 어렸을 적 한두 번인가 타본 후룸라이드를 나도 스무 번이 넘게 타게 되었다. 아무리 자유이용권이지만 진행하는 직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정을 짐작한 직원들은 괜찮다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시쳇말로 본전을 뽑은 것이다.

해가 뉘엿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성긴 빗방울이 잠깐 뿌렸다. 친구는 개의치 않고 신이 나서 걸었다. 비는 서쪽 하늘에 예쁜 노을을 만들고 반대쪽 하늘엔 무지개를 그렸다.
친구는 처음 보는 무지개라며 들뜬 목소리로 빨주노초파남보를 외쳤다.

"나는 행복한 순간을 가져보았지요. 앞으로 일어날 어떤 일과도 바꿀 수 없는 순간요. 그 순간들은 더 이상 내 인생에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해도 나를 선량하게 살아가게 할 거예요. 그 순간들이 앞으로의 내 생애를 지켜 줄 거예요."
- 신경숙 단편소설 「전설」 중에서 -

아내와 내게 친구와 보낸 2박3일이 그랬다.
친구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우영 만화 읽기 2 - 『십팔사략(十八史略)』  (0) 2022.08.08
소나기  (0) 2022.08.06
손자친구의 수수께끼  (0) 2022.07.29
복달임  (0) 2022.07.28
매미 한 마리  (0) 2022.07.2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