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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영화 몇 편 -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by 장돌뱅이. 2022. 8. 11.

1. WET SEASON

넷플릭스를 통해 여러 나라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건 즐거움이다.
이제까지 극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루마니아, 덴마크, 아이슬란드, 태국, 나이지리아 등등. 작품성과 상관없이(내겐 그런 평가를 내릴 소양이 없다.) 나는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여러 나라의 영화를 즐겨 선택한다. 『웻시즌』은 처음으로 본 싱가포르 영화다.

말레이시아 출신 링은 남편과 함께 거동이 불편한 시어버지를 모시고 산다. 직업은 중국어 교사다. 싱가포르 사람과 결혼을 했음에도 왜 그런지 싱가포르 국적을 얻지 못한 상태다. 링은 아이를 갖기를 갈망하여 시험관 시술을 여러 차례 시도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편은 그 일에 적극적이지 않을뿐더러 바람까지 피운다. 링이 가르치는 중국어는 중요도가 떨어지는 과목으로 취급되어 학교는 물론 학생들도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싱가포르는 4개의 공식 언어(영어, 중국어, 타밀어, 말레이어)가 있지만 영어가 대세인 듯 보인다.
도우미가 있지만 거의 링이 수발을 들던 시아버지가 죽고 나자 시댁의 식구들은 시아버지 명의의 집을 팔아 '공평하게' 나누자고 한다. 집안에서도 링은 존재감이 없다. 아버지가 죽음에 이르도록 전혀 관여하지 않던 사람들의 그 '공평하자'는 결정에 링은 의견을 내지 못한다. 외로운 링은 자신처럼 외로운 제자와 가까워지게 되고 학교에서 내몰린다. 끝내 남편과도 이혼을 하게 된다. 영화 내내 우기철의 비가 내린다. 링은 말레이시아의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우기가 끝났다며 빨래를 넌다. 햇살이 비치고 바람에 빨래가 하늘거린다.

링이 임신에 집착한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싱가포르 시민권을 따기 위한 안간힘 아니었을까? 해외에서 안정적인 체류 신분은 생활의 기본이다. 그것이 없이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권리마저 세찬 '빗줄기'에 쉽게 휩쓸리기 때문이다.

2. LIMBO


스코틀랜드의 외딴섬 황량한 곳에 난민 수용소가 있다.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와 가나 등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산다. 하루에 한 번 오는 우편배달부가 가져올 망명 허가서를 기다리는 일과 공중전화 박스에서 고향 사람과 통화, 그리고 교육을 받으며 시간을 보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파르하드는 32달 5일이나 되었다.
영화 포스터에 나와 있듯 한마디로 기다리는 일이 전부다. (WAITING IS A GROUP EFFORT.)

어쩌다 만나는 섬 주민들은 편견에 가득 차 있다.
"쟤들은 어울려 폭탄을 만든대··· 강간도 한대··· 인마, 알카에다나 IS처럼 개수작 부릴 생각 마···"

오마드는 시리아에서 전통 악기 우드를 연주했다. 수용소에서 어디든 악기를 들고 다니지만 손이 다쳐 연주를 할 수 없다. 형은 조국을 위해 싸우겠다고 시리아에 남아 있고 부모는 터어키에서 역시 난민으로 괄시를 견디고 있다. 오마르가 망명하면 돈을 벌어 부쳐주어야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되기나 할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답답한 마음에 파르하드에게 억지 심통을 부려본다.

"넌 어쩜 그리 태평해? 여기 오기 전에 넌 어떤 사람이었어?"
- 일부러 생각 안 해.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럴래?"
- 그럴 수 없잖아.
(···)
- 내가 돌아가지 않는 건 고향에선 나답게 살 수 없기 때문이야.

오마르의 악기에는 살구가 자라기 시작하는 고향집 정원의 봄 - 새와 재스민과 분수의 그림이 붙어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다마스쿠스의 봄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테니까.'
아랍어엔 '부크라 필미슈미시'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뜻은 '내일은 살구가 열리리라'로 희망적인 말 같지만 뜻밖에 '가망이 없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오마르는 덧붙인다. 한마디로 '꿈 깨!'라는 말이다.

답답하고 지루한 , 절망이 가득한 영화지만 분위기가 마냥 어둡지만 않다. 난민들끼리의 작은 배려와 위로가 막힌 숨통을 트이게 하고 어려움을 견디게 해주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에서 온 가게 주인은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 케첩과 마스터스 외에 구하기 힘든 소스를 구입해 놓기도 하고 오마르는 쓸쓸하게 죽은 동료의 주검을 직접 땅에 묻어주기도 한다.

처음에 림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나는 양쪽에 줄을 잡고 그 아래로 다리와 목을 비틀지 않고 지나가는 놀이를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뜻도 있었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영세받기 전의 어린아이처럼 원죄를 갖고 죽었으나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의 림보였다. 그곳은 연옥과는 다른 의미인 것 같았다. 한마디로 '천국과 지옥 사이의 어디쯤'이겠다.

난민들의 수용소가 그런 곳일까? 림보 놀이처럼 통과 높이가 점점 낮아져 종래는 통과할 수 없는 높이를 예감하는 곳. 아니면 망명 허가는 '면죄부'고 '천국 입장 허가서'쯤 되는 곳일까?
떠나온 곳에서는 '나답게 살 수 없는' 그들은 천국을 기다리는 사람들이기 전에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아닐까? '천국과 지옥 사이'를 덥힐 따뜻함만큼 그들을 떠나오게 하고 기다리게 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도 필요해 보인다.


3. 푸른 호수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안토니오 르블랑은 문신을 하며 살아간다. 아내 캐시와 딸 제시 그리고 곧 태어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어느 날 그는 경찰관과 억울한 시비에 휘말린 끝에 이민단속국으로 넘겨진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시민권이 없는 미등록 이주민(불법체류자) 신분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된다. 그는 기억을 할 수 없는 때부터 미국에서 살아온 실질적인 미국인임에도 한 순간에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한국으로 추방되는 공항에서 안토니오는 아내에게 말한다.

"내가 지금 가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나도 몰라. 내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연락할게."

『푸른 호수』는 2000년 이전에 미국으로 입양된 사람들 중에 귀화 신청이 안된 사람들이 추방당하는 사례를 그린 영화다. 입양 부모들이 해주었어야 할 일이기에 정작 본인은 당연한 미국인으로 살다가 갑자기 당할 수밖에 없다. 한국으로 추방되어 노숙자가 된 입양인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영화는 1945년 ∼ 1998년 사이에 입양된 25,000 ∼ 49,000명이 시민권을 갖지 못했을 것으로 추산한다. 안토니오처럼 성장을 하면서 입양 부모와 사이가 나빠지거나 헤어진 입양아들은 가장 기본적인 보호장치를 잃게 된다.

우리 사회는 종종 해외에서 성공하여 유명해진 '한국계'에 친밀함을 보내고 '같은 핏줄'의 자부심을 나누어 가지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가 '수출'해 버린 수많은 안토니오들의 삶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이전 글 참조 :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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