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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

by 장돌뱅이. 2021. 11. 21.

Daum 뉴스 화면에 위 기사가 보여 들어가 보았다.
미식축구 애리조나 카디널스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는 카일러 머리(24)라는 선수에 대한 기사였다. 24살의 그는 2019년 NFL 신인왕을 수상했고, 작년엔 올스타에 선정되었으며 올해에도 뛰어난 활약으로 MVP 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는 카일러 머리 선수가 "외할머니가 한국인인 '쿼터 코리안'"이라고 했다. 또한 기사는 그가 기자 회견장에 한국 축구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나오고, 인스타그램에 한글로 "초록불"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며, "어머니와 함께 언젠가 한국을 꼭 찾고 싶다" 고 말했다는 등의 '친 한국적인' 일화를 전했다. 미국에서 프로 야구의 인기까지 능가한다는 미식축구의 유명 스포츠 스타가 한국을 좋아한다는 소식은 기분 좋은 일이다. 슈퍼스타의 말과 행동은 팬들에게도 강한 영향을 끼치지 않겠는가.

물론 헤드라인 외에는 카일러 머리가 "내 몸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라는 말을 했다는 세부 기사는 없었다. 아마 기자가 상징적인 의미로 제목을 단 것 같다. '한국인의 피?' 어떤 의미일까?

이전에도 하인즈 워드라는 미식축구 선수가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때도 언론들이 자주 사용한 수사적 표현이 '한국계' 또는 '한국인의 피'였다.

"내 몸엔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라는 말을 검색창에 넣어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이 나왔다. 대부분이 국적은 외국이지만 '피'는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유명 두피관리업체의 일본인 사장, 뉴질랜드 프로 골퍼, UFC 미국 선수, 한인 3세라는 쿠바 화가 등등.

다음뉴스 캡쳐

그중에는 2017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남으로 뛰어서 귀순한 북한 병사에 관한 기사도 있었다. 당시 그 병사는 북측의 총격으로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된 뒤 긴급 수혈을 받아야 했다,
기사의 제목은 " 그의 몸엔 1만2000cc 한국인 피가 흐른다"였다.
대한민국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확실히 구분하려 했던 기자의 의도가 보인다.
하지만 어째 잠실경기장에서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우리나라 아나운서가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라고 오프닝 멘트를 날리는 경우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유별나게 다른 '한국인만의 피'는 허상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사람의 피는 국적에 상관없이 '사람의 피'로 동일하지 않은가.
국가마다 다른 문화적 특성은 자연환경과 사회·경제·역사적 조건의 상이(相異)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코 생래적이거나 항구 불변의 고정적인 실체일 수 없는 것이다. 이제 표현의 문제가 아닌 더 넓은 의미의 '피'를 생각해야 할 때 아닐까?
우리가 소망하는 미래란 '민족과 국가의 너머'의 어떤 진실에 있을 것이므로.


눈이 크고 얼굴이 까만
나영이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고,

알림장 못 읽는
준희 엄마는
베트남에서 왔고,

김치 못 먹어 쩔쩔매는
영호 아저씨 각시는
몽골에서 시집와

길에서 마주쳐도
시장에서 만나도
말이 안 통해
그냥 웃고 지나간다.

이러다가
우리 동네 사람들 속에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그래도 할머닌
걱정 말래.

아까시나무도
달맞이꽃도
개망초도
다 다른
먼 곳에서 왔지만
해마다 어울려 꽃피운다고.

-정진숙, 「걱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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