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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서울로 「上行」

by 장돌뱅이. 2022. 11. 19.

제주에 있는 한 달 동안 뉴스를 멀리하며 지냈다. 일부러 그랬다기보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하며 아내와 보낼 하루를 생각하고 실행하고,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하는 단순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으로 바빴다. 다만 이태원참사에 대한 소식만은 외면할 수 없어 놀람과 애도, 그리고 분노의 복합적인 감정으로 찾아보게 되었다.

*위 사진 : BBC News 캡쳐(기사 원문 : https://www.bbc.com/news/world-asia-63633115)

집에 돌아와 짐을 풀고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밀렸던 뉴스들도 하나둘 보게 되었다. 늘 그래왔듯 세상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삿(邪)된 일들로 요란했다.  
우연히 보게 된 BBC의 기사는 마음을 아프게 했다. 24살의 젊은 딸을 이태원참사로 떠나보내야 했던 송 씨의 이야기였다. 기사는 이미 많이 보도된  당국의 안전관리와 준비 부족과 응급 전화에 대한 조치 부실, 한 때 25% 이하까지 떨어졌던 현 정권지지도, 무책임, 꼬리짜르기, 희생양 등을 보도했다. 기사의 마지막 부분은 놀라웠다.

Before leaving his daughter's crematorium, Mr Song visited the urn of another of the Itaewon victims. He desperately wants to meet the other bereaved families, so they can find comfort in each other, but says authorities won't put them in touch. He cannot understand why they are being kept apart. Perhaps it is to stop them taking action, he wondered.
(딸의 추모장소를 떠나기 전 송 씨는 다른 이태원 희생자들의 유골함을 찾았다. 그는 다른 유족들과 만나 서로 위로 할 수 있기를 강렬히 원하지만 당국은 유족들이 접촉하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유족들을 떼어놓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행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은 아닐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송 씨의 생각이 사실일까? BBC는 판단하지 않았고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기사는 다만 "애도는 끝났고 지금은 분노의 시간"이라는 송 씨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전했다.

*위 사진 : 70년대 말 잡지 『월간 대화』의 뒷표지

여권의 일부 의원(들?)이 '현 정부에 악의적인 보도와 의도적인 비난으로 뉴스를 채워온다'며  기업들이 MBC에 광고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뉴스도 보았다. 유신 시대인 70년대 말 정권의 눈 밖에 난 광고를 실지 못했던 『월간 대화』가 떠올랐다. 그 시절 광고주들은 정권의 눈치를 보며 『월간 대화』에 광고를 주지 않았다. 그런데 반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 놀랍다.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라는 말도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 말을 재작년 한 해외봉사활동 강좌를 들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 '빈곤 포르노'는 봉사활동 단체에서 모금을 유도하기 위해 가난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정심(죄책감)을 유발하게 하는 사진과 영상을 의미한다. 식수로 쓰는 흙탕물과 피부병, 어린아이의 슬픈 눈동자를 강조는 식의······.  '빈곤 포르노'의 '스타 배우'라는 말도 있다고 하던가?

TV에서 이런 광고가 나올 때 채널을 돌리곤 했다. 내가 특별히 냉혈한이어서가 아니라 가난의 과장내지는 과도한 집중, 가난과 불행을 동일시하는 단순성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이 단어를 화제로 만든 사진과 당사자의 행위가 거기에 해당되는지 아닌지 판단할 소양을 나는 갖고 있지 못하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빈곤 포르노'는 어떤 전문적인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표현물을 의도한 주체가 그 행위 이전과 이후에 보여준 일관된 행동과 진정성 여부에 따라 판단될 문제일 것도 같다. 

아무튼 오래간만에 돌아온 일상은 속시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어쩌랴. 고립된 섬에서 혼자 꿈꾸며 살 수 없는 이상 이게 일상인 것을. 인용하는 시의 냉소나 풍자 만큼이나 이전투구의 진흙탕이라도 끌어안아, 버릴 것과 취할 것을 구분해내는 깨어있음과 지혜가 필요한 시간이다.

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平澤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다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네 곁에 있지 않으냐
황혼 속에 고함치는 원색의 지붕들과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는 TV 안테나들
흥미 있는 주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다오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 같은
심야 방송이 잠든 뒤의 전파 소리 같은
듣기 힘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다오
확성기마다 울려나오는 힘찬 노래와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는 얼마나 경쾌하냐
옛부터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었으니
맥주나 콜라를 마시며
즐거운 여행을 해다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아다오
놀라울 때는 다만
「아!」라고 말해다오
보다 긴 말을 하고 싶으면 침묵해다오
침묵이 어색할 때는
오랫동안 가문 날씨에 관하여
카타르˚의 축구 경기에 관하여
성장하는 GNP와 증권 시세에 관하여
이야기해다오
너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하여

- 김광규, 「上行」-

*"카타르˚"는 원래 시에 "아르헨티나"로 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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