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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태평천하

by 장돌뱅이. 2022. 10. 13.

10월 12일 한겨레만평


한 여당 인사가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 적이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또 “조선 왕조는 무능하고 무지했다”며 “일본은 국운을 걸고 청나라와 러시아를 무력으로 제압했고, 쓰러져가는 조선 왕조를 집어삼켰다”라고도 했다고 한다.

몇 가지 단순한 의문을 갖게 된다.
학교서 배웠던 구한말 몇 차례에 걸친 치열한 의병전쟁과 그 전의 동학농민전쟁은 그에게 무엇일까? 의병들이 계획했던 서울 진격작전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자신이 전쟁 포로임을 주장했던 것은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의 말대로 '국운을 걸고 청나라와 러시아를 무력으로 제압'할 정도로 힘센 나라는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 쓰러져가는' 약한 나라는 마음대로 '집어삼켜'도 된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집어삼킴'은 침략이 아니라 '해방'이 되는 걸까? 또한 그 논리는 덩치 크고 힘센 이른바 '일진'이 신체가 약하고 학업 성적도 시원찮은 교우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돈을 갈취하며 '빵셔틀'을 강요해도 정당하다거나 짧은 치마가 성폭력을 야기시켰다는 주장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100년이 넘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역사에는 야구에서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들이 실제로 발생했다고 한다. 어디 야구의 역사 뿐이겠는가? 우리의 역사, 특히 일본과 관계된 지난 역사에는 교묘한 우리 비하나 섣부른 일제 찬양과 동맹의 주장이 불러온 참담한 결과들이 실재한다.

 

임오군란 무렵 일본 밀정 혐의로 체포된 우범선(禹範善)은 대원군 앞에서 "(조선의) 난국을 헤치자면 일본과 동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귀양살이에서 풀려난 후 1895년 일본군이 양성한 친일 교두보인 훈련대에 들어간다. 명성황후가 이를 해산하려 하자 일본 미우라(三浦梧樓) 공사 일파는 황후를 시해하고 석유를 뿌려 불살라 버린다. 그는 이때 훈련대 제2대대를 이끌고 일본군의 대궐 공격을 가담(방군)하였다.

'을사오적·정미칠적·경술국적'이란 수식어가 붙은 대표적 매국 인물 이완용은 3·1 운동이 격화되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세 차례에 걸쳐 '경고문'을 발표한다.

"조선독립이라는 선동이 허설(虛說)이며 망동(妄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각 지방에서 이를 듣고 뒤따라 치안을 방해하니 당국에서 즉시에 엄중 진압하려면 못할 것도 없다. 근일 듣자 하니 모모 처에서 다수 인민이 사상(死傷)하였다 하니 그중에는 주창한 자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뒤따른 자일 것으로 자신한다. 남을 따라 망동하면 다치거나 죽음이 있을 것이니 이야말로 살아서 죽음을 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협박하는가 하면,

"본인이 다시 한마디 하고자 하는 것은 독립설이 허망함을 우리들로 하여금 확실히 깨닫게 하여 우리 조선민족의 장래 행복을 기도함에 있다. ······ 오늘날 구주대전(歐州大戰)으로 인해 전 세계를 개조하려는 시대에 우리가 이 삼천리에 불과한 강토와 모든 정도가 부족한 천여 백만의 인구로 독립을 고창함이 어찌 허망타 아니하리오."라고 하면서 조선독립의 불가능함을 강조하고. "병합 이래 근 10년 동안 총독정치의 성적을 보건대 인민이 누린 복지가 막대함은 내외국이 공인하는 바"라고 일제 강점을 찬양하였다.

이런 인식과 주장들은 해방 후 일본의 우익 인사들이 내뱉어온 숱한 망언들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1958년 : 기시 노부스케 총리: "나는 일본의 조선 식민통치가 한국 국민에게 불행이었다는 생각을 가져본 일이 없다"
1963년 시이나 에쯔사부로 외무대신: "일본의 대만과 조선에 대한 통치가 제국주의라면 그것은 영광의 제국주의다."
1966년 : 사토 에이사쿠 총리 "한일합방은 대등한 입장에서 자유의사에 따라서 조인된 합방조약의 결과이지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다."

문제가 된 여권 인사의 주장은 최근 동해상에서 있었던 한미일 군사훈련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자신들의 과거 행위에 반성은커녕 미화를 일삼는 일본의 군대와 함께 하는 군사 훈련은 무엇을 위한 것이고 누구를 향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우리는 과거 침략 당사국의 군대와 함께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걸까? "유사시 (일본군이 한반도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현재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말한 것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의문은 있지만 나 스스로 답을 말할 지식이나 능력은 없다. 다만 지난 역사에서 실제 있었던 사례를 찾아볼 뿐이다.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이 임박하자 대한제국은 중립을 선언하지만 일본은 이를 무시하고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했다. 일본에 협력할 것과 일본군의 한국 진출을 용이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러시아의 위협을 한일 군사협력의 명분으로 활용한 것이다. 실제로 위협은 물론 전쟁도 일본이 조장하고 도발하였음에도. 일본 자위대와 합동 군사훈련 소식을 듣고 한일의정서 제4조를 읽는 기분은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제4조 : 제3국의 침해 혹은 내란으로 인해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영토보전에 위험이 있을 경우, 대일본제국 정부는 속히 임기응변의 필요한 조치를 행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한제국 정부는 대일본제국 정부가 행동하기에 용이하도록 충분히 편의를 제공할 것. 대일본제국 정부는 전항(前項)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군사전략상 필요한 지점을 필요할 때마다 수용할 수 있을 것.

정치적으로 많은 '구린' 일들이 처음에는 '그럴 일 없다'는 부정으로 시작하여, '논의한 바 없다'거나 '아는 바 없다'로, 그리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다(NCND : Neither Confirm Nor Deny)'로 되었다가 '어쩔 수 없다'라는 이유로 현실화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사드도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배치되었던 것 같다.

채만식의 소설 중에 1930년 대 배경의『태평천하』가 있다. 소설 속에 지주이자 고리대금업과 부동산 투기로 부를 쌓은 윤 씨가 나온다.

"······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한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하여서, 우리 조선 놈 보호히여 주니, 오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허게 살 태평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

일본이 수십 만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우리 조선 놈을 보호하여 주니 고맙다는 윤 씨의 '태평천하!'가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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