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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한글날

by 장돌뱅이. 2022. 10. 9.


그저께는

엄마와 함께 그릇 사러 시장에 갔는데
그릇 판다는 가게는 없고
주방용품 판다는 가게만 보여서
못 사고 그냥 왔다

어제는
내 옷 사러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갔는데
어린이 옷 판다는 곳은 없고
아동복 판다는 곳만 있어서
못 사고 그냥 왔다

요새는
그릇 사려면 주방용품점에 가야 하고
어린이 옷은 아동복점에 가야 한다는 걸
엄마도 나도 깜빡했다
멍청하게도!

그래서 그만 그렇게 되었다
엄마와 난 이렇게 멍청하다

- 권오삼, 「멍청하게도」-


아침에 텔레비전을 켜니 화면 상단에 평소와는 다른 글자가 보였다.
EBS가 아니고 "교육방송"으로, KBS는 "한국방송", MBC는 "문화방송"으로 되어 있었다. SBS는 그대로였다. 한글날이니 하루라도 그렇게 써본다는 의도일까? 글쎄······ '하루만이라도'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더군다나 KBS가 기본적으로 "Korean Brodcasting System"이라는 영어의 약자임에 비해 일본의 NHK는 일본어 "Nippon Hōsō Kyōkai(일본방송협회)"의 약자임을 생각하면 '한국방송'이란 자막은 좀 알량해 보인다.

블로그에 글을 쓰고 맞춤법 검사를 누르면 틀린 곳이 많이 나온다. 개별 단어는 물론 띄어쓰기까지 나의 우리글 수준이 너무 허접하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평소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글 바로 쓰기』를 자주 들춰보는 편이다. 거기에 나의 글을 비추어 보면 맞춤법에 더해 바로 잡아야 할 곳이 더욱
 가중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말이 외국어보다 어렵다고 억지 푸념을 해보곤 한다.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말이 중국말과 일본말, 그리고 서양말이라는 세 겹의 짐을 지고 있다고 한다.
말을 글자로 적어놓은 것이 글일 터인데 예부터 지배 세력들은 중국글자를 써서 생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였다. 말과 글의 분리를 권위와 계급 과시, 통치와 지배의 한 수단으로 삼아온 것이다. 일상에서는 쓰지 않는 어려운 말을 구사하여 쉬운 말과 쉬운 글에 대한 열등감을 심어놓기도 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는 일본의 말과 글이, 해방 이후 지금까지는 서양말이 우리말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오덕 선생님은 지식인들과 글 쓰는 이들이 외국말법에 따른 직역투를 '유식하게' 쓰고 말하면서 우리말을 흔들어놓은 한 주범이라고 지적하였다.『우리글 바로쓰기』에는 그에 대한 예문이 풍부하게 나오지만 그중 몇 개만 고르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 불필요한 어려운 말(글로만 쓰는 말) :
*연습 비행 중 새떼와 조우 (새떼와 만나)
*
문제를 야기하고 (일으키고)

― 일본말과 다른 우리말의 관형격 조사 '의' : 우리말에서는 '의'를 잘 안 쓴다. 옛글에도 '의'는 좀처럼 잘 안 나온다. 입말(구어체)에서는 지금도 '의'는 잘 안 쓴다. 생략해도 말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말과 비교하면 이 특성은 두드러진다. 우리말은 "우리(의) 집"이라고 할 때 '의'를 생략해도 되지만 일본말에서는 “私の家”에서 'の'를 생략할 수 없다.
*혈육끼리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때가 -> 서로
*민정 압승했지만 정치권 모두의 패배 -> 모두
*그의 글의 최대의 장점 -> 최대

― '와의(과의)', '에의', '로의(으로의)', '에서의', '로서의(으로서의)', '로부터의(으로부터의)', '에로의(로의, 에의)'는 아예 일본말을 그대로 직역한 어투로 우리의 말법과는 맞지 않는다.

* 전통문화와의 만남 -> 전통문화와
* 아름다움에의 약속입니다 -> 아름다움을 약속합니다
* 앞으로의 귀추가 어떠하든 간에 -> 앞으로
* 글에서의 감동이란 -> 글에서, 글의, 글에서 얻는
* 소설가로서의 권위 -> 소설가로서, 소설가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감옥 속의, 감옥에서 (얻은 생각)
"참으로 훌륭한 책인데, 이름이 그만 잘못되었다"는 말을 더해놓았다.
* 행복에로의 인도 -> 행복으로 (인도함) (안내함), 행복의 (길잡이)

어떤 말의 앞이나 뒤에 붙여서 쓰는 -적(的), -화(化), -하(下), 재(再)-, 제(諸)-, 대(對)- :
*며칠 전에 읽은 책『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에도 이런 글이 나온다.

"특히나 이주여성의 출산율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일은 문제적. (···) 다문화 자녀들이 우수한 인재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권리를 투자 개념으로 바라보는 문제적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문제적이다
-> 문제(이)다
*문제적 발언
-> 문제 있는 발언, 문제 발언

― 우리말에는 맞지 않는 시제를 나타내는 영어의 번역투, '-었었다' :
지난때를 나타내는 보조어간 '었(았)'을 두 번이나 겹으로 쓰는 것은 우리말법에는 없는 잘못이다.
* 의지를 불태웠었다 . -> 불태웠다
* 시골에서 살았었습니다. -> 살았습니다
* 널 미워하지 않았었어. -> 않았어
* 너 아까 넘어졌었잖아. -> 넘어졌잖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우리말로 올라있어 공식적으로는 우리말인 것도 있고, 오래 써와서 급작스럽게 모조리 없애기는 힘들어 보이는 것도 있다. 잘못된 말은 될 수 있는 대로 안 쓰고 , 적게 쓰도록 조심하ㅁ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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