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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by 장돌뱅이. 2022. 10. 7.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필리핀에 갔던 한국인 여행객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입국신고서를 불성실하게 작성하여  심사 직원으로부터 수정 지시를 받자 흥분하여 소란을 피웠다. "니들 나라에 돈 쓰려고 온 사람한테 그깟 걸 갖고 왜 성가시게구냐"는 것이 그의 '당당한' 이유였다. 그는 결국 입국 거부를 당했다고 한다. 이른바 그 시절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던 '어글리 코리안'에 한 예가 되겠다.

(*이전 글 참조 :
  2005.07.06 - 출장단상 )

 

출장단상 - 스미마셍

외국을 다니다 보면 더러 외면하고픈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방콕에서 싱가포르 가는 타이항공을 탔다가 이른바 ‘어글리 코리안’의 한 전형을 보았다.

jangdolbange.tistory.com

해외여행 초기의 '달러로 부채질 하는' 식의 거드름 관광을 다니던 천박한 모습은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90년 대 이후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나 한국인과 결혼해서 이주해온 여성에 대한 터무니 없는 우월감과 편견, 차별과 학대, 폭력까지 국내에서 벌어지는 '어글리'는 여전하다.
오죽했으면 "뭡니까 이게? 사장님 나빠요!"가 인기 코미디 소재가 되고 유행어가 되었겠는가.

2년 정도 미얀마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일이 있다.
그때 한 센터에서 같은 강좌를 듣는 옆자리의 수강생이 경악할 만한 말을 내게 건넸다. 

"그런다고 걔네들 고마운 줄 모를 걸요.
우리 정부가 퍼주는 게 많아서 웬만큼으로는 걔네들이 눈도 깜짝하지 않아요."

늘 재미있는 유모어를 구사할 줄 아는 넉넉한 품성의 소유자로 보였기에 충격의 강도는 더욱 컸다.
도대체 어디서 어떤 '걔네들'을 경험을 한 것일까? 그때 내가 만나는 이주노동자는 철제 컨테이너 하우스 안에서 창문마다 옷으로 막아놓고 한 겨울 추위와 싸우고 있었다.
(한 번은 그가 단톡방에 '오늘 추워서 집에 난리가 났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무슨 일인가 놀라서 전화를 해보니 너무 추워서 '난로를 들여놨다'는 말의 오기여서 웃었던 적이 있다.)

중국 여성과 결혼한 사람이 있다. 그는 사람들이 백인 여성과 결혼한 사람에게는 '국제결혼'이라는 표현을 쓰고 자신처럼 이른바 '제3세계' 여성들과 결혼한 사람에게는 '다문화가정'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했다. 두 단어 중 어느 것도 잘못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 차이를 꼭 집어 말할 수도 없지만, 듣고 보니 뭔가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차별과 학대는 그처럼 은근한 어감에서부터 원색적이고 직접적인 폭력에까지 다양한 형태로 진행 중이다.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에는 충북 옥천의 결혼이주여성들이 받는 부당한 유·무형의 차별과  폭력,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생생하고 절박한 증언이 담겨 있다.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옥천에는 약 423면의 결혼이주여성이 거주하고 있다.(이주노동자 301명과 계절노동자 60명도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옥천에만 해당되는 상황이 아니라 전체적인  상황이며, 이주여성들도 우리나라 국민이므로 대한민국 여성의 문제,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  이주여성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고 '누군가에 소속된 존재'로 보 본다 . 이주여성들에 대한 '하대' 표현은 일상적이다.
("저는 한국 사람처럼 보이나 봐요. 그런데 베트남에서 왔다고 하면 바로 반말해요. 너 누구 며느리야. 너 누구야. 처음 만난 건데 너무 무시하고 안 좋게 봐요.")

- 다문화가족이란 말 그대로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는 가족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주여성들은 다문화가족으로 동등한 자격을 갖지 못한다. 자신의 문화, 언어, 전통을 모두 버리고 한국문화에 동화되도록 강제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주여성에게 동화에 대한 '설득' 과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한국식으로 살아야 한다'가 논리이고 지시이다.
("한국에 왔으니까 한국법만 따르라고 해요. 베트남 언어 못 쓰게 하고. 베트남 방송도 못 보게 하고. 베트남 음식 못 먹게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집에서는 한국 음식만 먹으라고. 한국 사람도 베트남 음식 좋아하지 않아요? 한국 사람은 다른 나라 갔다고 음식까지 다 바꾸지 않잖아요. 왜 맨닐 무조건 베트남 사람한테만 음식이랑 언어랑 친구랑 다 바꾸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 이주 여성에겐 경제권이 없다. 한국에 온 이래 집에서 청소, 요리, 시부모 모시기, 출산과 육아, 한국어 습득, 농사 등 다중적인 노동을 수행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월급을 받지 않는 이주여성의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주여성은 친정에 돈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생기거나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때면 흔히 남편으로부터 '노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집안일은 아예 안 해요. 집안일은 여자만 해야 하는 거고 그러고 그런 건 별것도 아니라고 해. 나 퇴근하면 빨래하고 반찬하고 집 청소하고 정말 잠자는 시간 빼고 계속 일하는 거예요.")

("저 잔업 많이 해도 150만 원 받았거든요. 근데 남편이 돈을 안 버니까 그거 생활비로 써야 하는데, 그때 시어머니가 너 적금 안 하면 아기 안 보여준다고 해서 힘들어도 눈 딱 감고 매달 50만 원씩 적금했어요. 내 통장이 아니고 시어머니 통장에. (···) 아예 제 생활은 없죠. 친정에는 아예 돈 못 보내고. 100만원으로 살아야하니까. 내가 이러려고 왔나, 그런  생각도 들고. 잘 살려고 온 건데 너무 힘드니까. 그러면 너무 속상한데, 너는 잘 모르니까 내가 하는 말 따라야 한다, 그러니까.")

-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의 42.1%가 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전국 가족 폭력 경험 비율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그러나 '가정폭력' 으로부터 이주여성들을 지켜줄 지지체계는 없다.
("싸우면 문을 잠근대요. 그리고 너 나가, 너네 나라로 가, 그러면서 못들어오게 하고. 그럼 나와서 뭐 집 근처에 숨어 있거나 친구네 가야 해요. (···) 그런데 이틀 정도 있다가 다시 돌아갔어요. 갈 데 없으니까. 막 때리고 눈도 까매지고 그랬어요. 아기가 없어서, 1년 살다가 이혼했어요.")

("몇 대 치는 정도는 그냥 화나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요. 근데 (···) 112에 신고할 정도면 심각한 거예요.목을 조르는데 정말 죽을 수 있다고 느끼는 거죠. 근데도 경찰이 와서 하는 말이 사이좋게 지내라고 해요.  (···)부인한테 자꾸 물어봐요. 남편 교도소 가면 좋냐고.  (···)  애기도 있거 먹고사는 것도 어렵고 그러니까 그냥 참다 참다 죽거나 도망치는 거죠.")

- 2022년 6월 지자체선거를 앞두고 옥천의 이주여성들은 이주민의 권리를 주장하는 기자 회견과 정책 토론회를 가졌다. 참석한 후보자들에게 이주민 지원조례 제정, 이주민 센터 설립, 이주민 복지정책 마련 등의 내용이 담긴 구호를 외쳤다. 후보자들이 이주여성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가 출산율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등의 다양한 선택을 하고 살아가는 이주여성들을 지원할 근거가 없어진다는 이유였다. 그에 앞서 이것 역시 개인의 선택이라는 자유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각 개인이 존중받을 수 있는 고유한 권리가 있습니다. 가족에 얽매이지 않더라도, 이주여성 자체로 소중한 이들입니다. 우리는 이 권리를 위해 싸우려고 합니다. (···) 각자의 고통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 혐오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린 더 당당해지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이주여성의 정책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요구할 것입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것입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관철되는 그날까지 싸울 것입니다. 그날까지 함께 연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회적 약자의 슬픔과 분노에 대한 공감은 소중하다.  그러나 변화를 위해서는 조직화 된 행동이 더해져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에, 그들의 당당한 주장에, 무수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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