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추억의 독서 10(끝)

by 장돌뱅이. 2022. 10. 5.

11.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

신학철, 「모내기」, 1987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전쟁과 학살, 억압과 착취로 얼룩진 (물론 평화와 인권, 자유와 해방을 위한 저항도 반대쪽 한 축을 이루었지만) 20세기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의 하나였다. 1990년 10월 3일에는 동과 서로 나뉘어 있던 독일이 하나로 합쳐지게 되었다. 이질적인 체제와 경제, 문화의 급속한 통합은 만만찮은 후유증을 낳았지만  결국 독일은 이를 극복하고 세계사의 큰 진전을 이끌어었다. 동독에 이어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사회주의권 국가의 이탈과 변화가 뒤따랐다.

사회주의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일자리를 주고 주택과 식량을 배급했으며 교육 기회와 기본 의료혜택을 제공했다. 인신매매와 조직폭력을 비롯한 사회악이 현저히 줄었고 사회를 분열시킬 정도의 심각한 빈부격차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것은 지속 가능한 성공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체제의 뿌리를 뒤흔들 위험 요소가 쌓였다. (···)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핵심은 생산수단을 개인이 아니라 '모든 인민 또는 사회'가 소유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법률로 폐지한다고 해도 의사결정권 자체는 없앨 수 없다. 누군가는 공장과 기계와 원료를 조달하고 생산과정을 관리하고 생산물을 처분하고 수익을 배분하는 데 필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하며 어떤 방법으로도 집행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생산수단에 대한 법적 소유자가 그 권한을 행사한다. 소련에서는 '국가'가 그 권한을 자치했다. 그런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국가'가 아니라 '정부'고, 더 정확하게는 정부를 구성하는 사람이다. 소련은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였으므로 중앙과 지방의 공산당 간부들이 의사결정권을 행사했다. 노동자와 농민 또는 인민은 원리상 생산수단의 소유자였지만 현실에서는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중에서 -

'원인이 인민이 아니라 제도에 있었다'는 허탈한(?) 결론을 남긴 채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살게 된 우리로서는 독일의 통일 과정 전부가 부러움과 감동으로 다가온다. 특히 '프라이카우프(Freikauf)'는 서독이 얼마나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동독을 대하고 통일을 준비해 왔는지 알게 된 정책이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실적 과시나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통일이 될 때까지 흔들림 없이, 그것도 비밀로, 유지되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프라이카우프는 '돈으로 자유를 산다'는 뜻이다. 1960년대 초 동독에는 1만 2천여 명의 정치범이 있었다. 서독 정부는 그들을 구출하려고 여러 시도를 했고, 1963년 동독 정부가 처음으로 협상에 응했다. 첫 번째 '거래'에서 여덟 명을 넘겨받고 34만 서독마르크(DM0를 지불했다. '몸값' 산정 근거는 교육비였다. 당시 환율로 계산하며 총액 8만 5천 달러, 한 사람당 1만 달러가 조금 넘었다. 학력과 직업에 따라 달랐던 몸값은 점점 올라가 1989년에는 평균 10만 마르크, 그 시점의 환율을 적용하면 5만 달러에 육박했다. 통일 이후 독일 정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서독은 26년 동안 35억 마르크를 지불하고 동독 시민 3만 3,755명을 데려왔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중에서 -


독일의 통일은 펠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내세운 고르바쵸프가 마련해준  '선물'이라지만 준비된 국가와 사회만이 그런 국제 정세의 변화에 제대로 올라탈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전 글 참조 : 문병란의「직녀에게」

 

내가 읽은 쉬운 시 41 - 문병란의「직녀에게」

어지럽다. 화려한 논리와 명분으로 치장한 무서운 주장들이 거칠게 몰아치고 있다.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탐욕들이 나라 안팍에서 들썩인다. 복잡한 실타래는 때로 단순하게 보면 풀리는 길

jangdolbange.tistory.com

독일과 우리는 분단의 이유도 과정도 지정학적 위치도 다르다. 통일도 다른 방식일 수밖에 없다.
통일은 '흡수'가 아니고 '대박'도 아니다. 과거로 돌아가는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새로운 미래의 창조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같은 민족이라는 공동운명체의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 세대에게는 희망이지만 다음 세대에게는 우리의 책임이라는 자각도 필요하다. 

우리가 확실한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토대는 남북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행동반경을 함께 넓혀나가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을 '자기 속에 들어 있는 타자(他者)'로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을 전제해야 합니다. 남과 북이 똑같다면 통일이라는 문제는 처음부터 제기되지 않을 것이고, 남과 북이 아예 다르다면 마찬가지로 통일 문제가 애초부터 제기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과 북이 다르면서도 같고, 같으면서도 다른 긴장된 현실을 인정한 토대 위해서 공통분모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 '민족화해'이고, 이러한 과정 자체가 바로 '통일'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 송두율, 『민족은 사라지지 않는다』중에서 -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0) 2022.10.07
강과 호수  (0) 2022.10.06
추억의 독서 9  (0) 2022.10.05
앗싸라비아 콜롬비아  (0) 2022.10.04
추억의 독서 8  (0) 2022.10.0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