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낙원구 행복동에 살던 김불이

by 장돌뱅이. 2022. 12. 28.

교사가 물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어느 쪽이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한 학생이 일어섰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교사는 아니라고 했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똑같은 질문을 한번 더 던졌다. 학생이 쉽게 대답했다.
"저희들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교사는 이번에도 틀렸다고 말했다. 의아해하는 학생들에게 교사가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서두에 나오는 일화다.
원래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였던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 다른 사람의 삶에는 우리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슬픔이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난쏘공'으로 70년대 낙원구 행복동에 살던 김불이 씨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아프게 그러면서도 아름답게  들려주었던 소설가 조세희 씨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책장에서 오래간만에 '난쏘공'과 그의 다른 글을 꺼내어 읽으며 잠시 나의 얼굴과 내가 사는 세상을 비쳐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스위스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을 몇 십 년 동안 들어왔다. 우리 시민들에게 스위스가 낙원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러나, 스위스 사람들은 어떤 나라에 특히 스위스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 나라에는 아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구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바로 스위스 작가가 쓴 『스위스인의 스위스』라는 글을 읽고 알았다. 이 글을 쓴 페터 빅셀은 몇 안 되는 나의 친구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나를 모른다. 나의 글이 스위스 말로 번역된 것이 없고, 우리가 대륙이나 대양을 뛰어넘어 서로 손을 잡고 악수한 적도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나를 모른다고 내가 그를 친구로 생각해서 안 된다는 법은 없다. 서로의 이름과 국적, 사상, 정치적인 견해, 또는 학력이나 가족 관계를 잘 알아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세상모르는 친구들만 사귀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빅셀에 의하면, 이 세계에는 자유가 없는 독립 국가가 아직도 많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자유가 없는 독립 국가는 또 얼마나 불행한 나라이겠는가?
(···) 성공한 나라의 시민들처럼 나는 스위스를 낙원, 즉 파라다이스로 떠올리지는 않는다. 이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스위스는 낙원이 아니라 스위스인의 긍지를 갖고 "나는 스위스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하는 나라이다. 이 세계에는 어려운 생활을 하는 여러 인종에게 낙원이라는 착각을 주는 나라가 몇 있는데, 우리는 낙원으로 보여지는 이들 나라의 공통선, 다시 말해 개인적이 아닌 공공의 선에 대해 끊임없이 거론한다는 사실을 묵살하고 있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시간을 초월한 여행이 가능하다면 나는 지금 당장 미국, 그것도 전 세계 인구의 5 또는 6 퍼센트로서 전세계 자원의 30 내지 40 퍼센트를 소비한다는, 그래서 초국적 교육자나 종교인들의 지탄을 받기도 하는 오늘의 부자 나라가 아니라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출구를 찾던 대공황기의 어려운 미국에 가고 싶다. 그때 그 나라의 대통령은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국민들에게 "다행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정신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이라고 보고했다.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답게 그는 알맞은 말을 국민에게 전했다.


- 조세희의 글, 「어린 왕자」 중에서 -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해의 '첫' 일들  (0) 2023.01.03
오는 해, 가는 세월  (2) 2023.01.01
친구들의 연말  (0) 2022.12.26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2) 2022.12.25
눈 내리는 날  (0) 2022.12.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