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산책을 하기 전에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돌았다. 운동장 한 구석에서는 고등학생 네댓 명이 동그랗게 모여 축구공으로 몸을 풀고 있었다. 가볍게 톡톡 차는 패스 놀이였는데 한 아이가 갑자기 강하게 공을 찼다. 공이 내 머리 쪽으로 날아왔지만 시야에 두고 있었기에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그때 공을 주으러 뛰어가던 아이가 소리를 쳤다. "야, 이 할아버지 맞을 뻔했잖아! (나를 보며)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손자저하들 이외의 사람에게 처음으로 듣는 호칭이었다. 내가 이젠 그렇게 늙어 보이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에 만난 아내에게 그 말을 했더니 큭큭큭 웃었다. "할아버지 맞잖아. 뭘 새삼스레 충격을 받았다는 투로 말해?"
충격까지는 아니라는 걸 , 다만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할아버지'라고 불린 일이 처음이라 조금 어색하고 신기해하고 있다는 걸 아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늘 그럼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늘 그럼그럼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 늘 그렁 눈에 밟히는 것 늘 그렁그렁 눈가에 맺힌 이슬 같은 것 늘 그걸 넘지 않으려 조심하는 것 늘 거기 지워진 금을 다시 그려 넣는 것 늘 거기 가버린 것들 손꼽아 기다리는 것 늘 그만큼 가득한 것 늘 그만큼 궁금하여 멀리 내다보는 것 늘 그럼그럼 늘 그렁그렁
- 최영철, 「늙음」 -
모든 젊은이는 모두 늙을 사람이다. 저들처럼 운동장을 가볍게 뛰어다니던 학창 시절을 기억 저 멀리 두고 나는 지나왔을 뿐이다. 가끔씩 젊은 시절의 추억을 아름답게 떠올려보긴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저기 부실해지는 몸이 불편할 뿐 나는 늙은 오늘에 큰 불만이 없다. 없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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