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절 붉고 노란 단풍으로
내 마음 끝없이 일렁이게 하더니
끝없이 일렁여 솔미치광이버섯처럼
내가 네 속을 헤매며
네가 내 속을 할퀴며 피
흘리게 하더니
이제 산은 겨울산이다
너는 먼빛으로도 겨울산이다
어느결에 소스라치게 단풍 들어
네 피에 내가 취해 가을이 가고
풍성했던 열애가 가고
이제 우린 겨울산이다
마침내 헐벗은 사랑이다
추운 애인아
누더기라도 벗어주랴
목도리라도 둘러주랴
쌀 한줌 두부 한모 사들고 돌아오는 저녁
내 야트막한 골목길에 멈취서서 바라보면
배고픈 애인아
따뜻한 저녁 한끼 지어주랴
너도 삶이 만만치 않았으리니
내 슬픔에 네가 기대어
네 고독에 내가 기대어
겨울을 살자
이 겨울을 살자
- 김태정, 「겨울산」-
사랑이 붉고 노란 단풍처럼 화려하고 풍성하기만 하랴.
서로를 헤매고 할퀴는 일렁임이 스러진 뒤의 사랑은 추위를 견디기 위해 벗어주는 누더기고 목도리며 쌀 한줌 두부 한모로 지어주는 따뜻한 저녁 한끼일 수도 있으리라.
'내 슬픔에 네가 기대고 네 고독에 내가 기대어'.
반드시 추운 겨울이 아니라 해도.
시인 김태정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1년 『사상문예운동』에 「雨水」 외 6편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한 권을 남기고 2011년 9월 6일 머물던 해남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는 고요하고 따뜻하며 조금은 쓸쓸하기도 하다. 김태정은 생전에 모 문화재단에서 오백만원을 지원하려 하자, 쓸데가 없노라고 한사코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넋은 미황사가 받아주었다.
태정 태정 슬픈 태정
망초꽃처럼 말갛던 태정
할머니 할아버지들 곁에서 겁 많은 귀뚜라미처럼 살았을 것이다.
길고 느린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을 마루 끝에 앉아 지켜보았을 것이다.
한달에 오만원도 안 쓰고 지냈을 것이다.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이,
시를 써 장에 내는 일도 부질없어
조금만 먹고 거북이처럼 조금만 숨 쉬었을 것이다.
얼찐거리다 가는 동네 개들을 무심히 내다보며
그 바닥 초본식물처럼 엎드려 살다 갔을 것이다.
- 김사인의 시, 「김태정」 중에서 -
끝 모를 허기와 탐욕으로 소란스러운 세상에 '망초꽃처럼 말간' 김태정의 시는 위로다.
꼼꼼히 읽고 또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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