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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발목 다친 손자저하

by 장돌뱅이. 2024. 1. 18.

시작이 자못 요란·험난하다. 저하는 겨울방학 첫 주를 독감으로 보냈다.
고열이 위험 수치를 넘나들었다. 함께 하기로 했던 여행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주는 저하가 축구를 하다 발목을 다쳐 왔다. 깁스를 해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집에서 쉬며 안정을 취하라는 의사의 권유가 있었다. 또다시 예약을 해두었던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서 머물러야 했다.

활동공간이 집안으로 제약되니 저하 모시기가 더 어려웠다.
체스와 장기를 하고 보드게임으로 체커, 모두의 마블, GO FISH 등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밖에 나가 공놀이를 하거나 박물관이나 과학관에서 하는 체험활동을 하는 편이 쉬울 것 같았다.

역사 인물 알아맞히기에서 저하는 카드를 제일 많이 획득했다. 
"역시 역사에 대해선 내가 좀 알지."
자기 앞에 쌓이는 카드를 보며 저하는 흡족해했다.
아내와 나의 '아까운' 실수가 많았다는 건 눈치채지 못했다. 이런 '실수'가 교육적으로 좋다 나쁘다를 두고 식구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나는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고 딸아이는 냉철하게 하는 편이다. 할머니는 중간이다. 그래서 저하는 제 엄마는 상대하기에 깐깐하다고 느끼고 할아버지는 만만하게 본다.

저하가 가져온 책과 서점에서 새로 산 만화책으로 독서시간도 갖고 

애니메이션 영화 <<월 ·E>>와 <<벅'스 라이프(Bug's Life)>> 함께 보기도 했다.
PIXAR의 애니메이션 영화는 어른이 보아도, 이미 본 걸 또다시 보아도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쓰레기로 뒤덮인 폐허의 지구에 남은 로봇의 생존과 우정, 모험과 희망을 따뜻하게 그린  <<월 ·E>> 가 그렇고, 열심히 일하며 사는 개미와 부당한 폭력을 행사하며 개미의 먹이를 갈취하려는 메뚜기, 그 둘 사이의 갈등과 개미들의 용기를 보여주는 <<벅'스 라이프>>가 그렇다. 특히 약한 개미들이 힘을 합쳐 메뚜기들에게 저항하며 던지는 말은 지금의  우리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처럼 들리기도 했다.

"개미는 메뚜기들을 위해 일하라고 있는 게 아니야. 우린 좋은 일 많이 하고 살았어. 지금까지 우린 열심히 먹이를 거둬서 우리뿐 아니라 너희까지 먹여 살려왔어! 그러니 누가 더 못난 족속이지?! 개미는 메뚜기들의 노예가 아니야!! 메뚜기들이 얹혀사는 거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린 강해. 사실 너도··· 알고 있지?"

프렌치토스트와 바나나구이

음식은 늘 그래왔듯 철저히 저하의 입맛이 기준이다.
닭죽,  떡만둣국, 프렌치토스트, 바싹불고기 등을 아내와 번갈아 가며 만들었다.
사 먹기도 했다. 갈릭스노윙 피자부터 시작했다. 발목을 다치지 않았더라도 긴 방학 동안 일주일에 3일은 우리 집에서 보낼 것이기에  탕수육과 고르곤졸라 피자 따위는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저하는 요즘 들어 갑자기 두부요리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친절하게 취향을 밝히기도 했다.

너는 비둘기를 사랑하고
초롱꽃을 사랑하고
너는 애기를 사랑하고
또 시냇물 소리와 산들바람과
흰 구름까지를 사랑한다

그러한 너를 내가 사랑하므로
나는 저절로
비둘기를 사랑하고
초롱꽃, 애기, 시냇물 소리,
산들바람, 흰 구름까지를 또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  나태주, 「
그러므로」-

저하와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비교불가의 즐거움이다. 
하지만 'day by day
··· year by  year ···' 더 힘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노당익장(老當益壯, 노익장)은 '늙었어도 기력이 좋아진다'며 세월을 거스르려는 늙은이의 허세일까?
아니면 '늙을수록 기백이 넘쳐야 한다'는 투지만만한 다짐일까?
내겐  그저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이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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