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동안 저하1호는 매주 3일을 우리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방학이니 주로 노는 게 일이다.
나와 둘이서 체스와 장기를 두거나 아내와 셋이서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혼자 넷플릭스로 <<최강전사 미니특공대>>를 보기도 한다.
저하와 함께 책을 읽는 시간도 빼놓을 수 없다. 놀이를 더하고 싶어 늘 아쉬움을 표하는 저하는 아내가 성경을 쓰고 나도 책을 잡고 앉으면 이내 수긍을 하고 자신의 책을 펼친다.
요즈음 저하가 읽은 책은 『52층 나무집』과 『마법 천자문』이다.
17세기 중국 장수성 사람 김성탄(金聖歎)은 사는 동안 서른세 가지의 즐거움 (不亦快哉三十參則, 불역쾌재삼십삼칙)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중 한 가지가 자식들이 글을 읽는 모습이다.
"자식들이 글을 읽는데, 유려하기가 병에서 물 흘러나오듯 한다. 이 또한 유쾌하지 않은가!"
나는 딸아이가 지금의 저하 나이에 읽었던 『남북 어린이가 함께 보는 창작동화』를 권해보지만, 저하는 빛바랜 책장(冊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다지 내켜하지 않아 한다. 대신 내가 이야기 중의 하나를 골라 읽어 주면 가만히 귀를 기울여 준다. 딸아이가 읽던 책을 한 세대를 건넌 저하에게 읽어줄 때면 흘러간 시간의 크기가 실감되면서 기분이 묘해진다.
한 주에 한 번은 외출을 하여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가보려고 한다.
추운 겨울이다 보니 아무래도 외부활동보다는 실내에서 보낼 수 있는 곳을 알아봐야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그 첫 선택지였다. 사전 예약이 필요했다. 직접 보고 만지는 체험과 놀이를 통해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갖도록 배려한 여러 가지 전시물이 있었다.
손으로 돌리며 계절에 따른 북두칠성의 변화를 확인하는 아날로그 방식과 검은 하늘 배경에 레이저빔을 쏘아 우주의 신비를 강조하는 디지털 방식 중 어느 것이 아이들의 품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 나로서는 판단 불가이다. 다만 이미 박물관 밖에서 현란하고 자극적이며 속도감 있는 디지털 문물에 익숙한 저하에게는 아날로그 방식의 전시물이 좀 싱거운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입장 후 초기에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호기심을 보이던 저하는 이내 시들해져서 예정시간보다 조금 빨리 나와야 했다.
저하는 또래의 아이들처럼 비행기나 기차, 이층버스, 지하철 따위의 대중교통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지하철역이나 버스 정거장까지 걸어가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좀처럼 걷지 않고 일상생활을 하는 저하 세대의 환경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학원 차가 시간에 맞춰 아파트 입구나 학교 정문으로 태우러 오거나 데려다주러 오고, 가족끼리의 나들이도 차로 이동해서 주차장에서 목적지까지 잠깐 걷는 것이 전부이지 않는가.
생각해 보면 운동은 축구클럽과 스케이트장과 수영장에서 하고 생활에서는 육체를 쓰는 움직임을 가능한 작게 하려는, 운동과 일상이 분리된 문화는 이미 저하 세대 이전부터 시작된 일이기도 하다.
지하철 역이 왜 이렇게 머냐고 궁시렁거리며 걷다가 일단 지하철 역에 들어서면 그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저하는 장난과 익살을 다시 시작한다.
키즈오토파크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통안전을 무료로 교육시키는 곳이다. 인터넷을 통해 예약을 해야 한다. 보호자들은 입장이 불가하여 세부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모형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 밖으로 나올 때만 담장 너머로 볼 수 있다. 저하는 자동차의 속도가 너무 느려 답답하다고 했다.
"사람은 살아서 도에 귀의하지만, 먹고 입는 것이 그 시작이다(人生歸於道 衣食固其端)."
도연명까지 동원한 것은 너무 거창하지만 저하에게 올리는 상차림도 가히 모든 즐거움의 시작이다.
저하의 입맛은 이미 '단짠단짠'에 어느 정도 기울어져있다.
돌이켜보면 그 나이에 나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기에 크게 우려하거나 아쉬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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