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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은빛 억새가 있는 산행3 - 민둥산

by 장돌뱅이. 2012. 5. 24.

 3. 강원 정선 민둥산.
나무가 없는 산을 민둥산이라고 한다. 이럴 때 민둥산은 보통명사이다.
강원도 정선군에는 고유명사의 민둥산이 있다. 이름 그대로 나무는 없이 억새가 가득하다.
소나무와 잡목 등이 우거진 등산로 초입을 벗어나면 동그스름한 곡선의 산 능선을 따라
광활하게 펼쳐진 억새밭이 시야에 들어온다.

증산초등학교를 기점으로 잡아 왕복 4시간 남짓한 산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아내와
나는 산의 중턱에 자리 잡은 해발 800미터의 밭구덕마을까지 차를 몰고 가서 산에 올랐다.
민둥산의 높이가 1,118미터 정도이니 300미터 정도만 오르는 산행이었다.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할 경우 왕복 산행 시간이 1시간 반 정도면 충분하여 땀이 좀 나다가 마는 싱거운
산행이 된다. 아내처럼 다소 체력이 약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권장할 코스는 못 된다.

밭구덕마을은, 밥그릇처럼 움푹 페인, 석회암지대에 발달되는 독특한 형태의 지반 위에
있는 마을이다. 경사면을 따라 식용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듯 했다. 배추의 가을걷이가
벌써 끝난 듯 채소밭엔 시래기만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더덕공동재배라는 표지판이 서있는
넓은 밭에는 땅을 뒤집는 포크레인 소리가 요란하였다.

산길은 제법 경사가 있었지만 정상까지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져 발걸음이 포근했다.
산을 오르는 내내 탁 트인 시야 속에 억새를 보며 오를 수 있어 눈도 즐거웠다.
다만 가을철에 어울리지 않은 우중충한 먹구름 때문에 햇빛이 사라져 제대로 된 억새의
흰빛을 볼 수 없었던 점이 아쉬울 뿐이었다.

햇빛이 없어도 등산길은 많은 사람들의 울긋불긋한 옷차림과 쉬임 없는 이야기 소리로
들떠 있었다. 산 정상의 표지석 앞에선 아내도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드는 고전적인(?)
포즈를 취하며 함께 즐거워했다.

10월 들어 주말마다 계속된 산행에 아내는 좀 지쳐했다.
“힘들어? 이번 주말에는 집에서 차분히 쉬도록 하자.”
나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선심(?)을 베풀었다. 


*위 사진 : 작년 가을 진동리의 단풍.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대학 동창 녀석이었다.

“요번 주말쯤 진동리에 단풍이 절정일 거야. 산장을 이틀 빌려놨는데 너도 ‘제수씨’(아내)
모시고 와라. 가을 아침가리 못 보면 너 후회한다. 단풍은 금방 시드는 거 알지?”

나는 친구의 협박에 일 분만에 아내와 한 약속을 깰 수 밖에 없었다.
아내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그리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용기를 얻어 썰렁한 농담을 던졌다.

“그래! 우리는 체력을 키워야 돼. 그래야 기계인간들이 지구를 정복했을 때
터미네이터들과 싸워 지구를 구해낼 수가 있지.”

우리의 가을!
정말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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