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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DOHENY STATE PARK에서의 하룻밤

by 장돌뱅이. 2012. 5. 29.

DOHENY STATE PARK는 샌디에고와 엘에이의 중간 쯤에 있는 해변이다.

집에서 차로 한시간 정도의 거리는
운전의 부담은 적은 반면 어딘가로 떠나왔다는 기분은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지정된 장소에 차를 세우자마자 서둘러 바닷가부터 나가보았다.

완만한 곡선으로 휘어진 해안선과 직선의 수평선,
모래와 파도와 하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단순한 풍경이면서도 바다는 바라볼 때마다
늘 가슴 후련한 만족감을 가득히 안겨준다.

해변에서 돌아와 텐트를 쳤다.
옆 자리는 커다란 RV 차량이 차지하고 있었다.
텐트를 치고 난 아내와 내가 부러움 섞인 관심을 보이자
주인 양반이 선뜻 내부 구경을 시켜준다.
아내와 나로서는 처음 구경하는 RV차량의 내부였다.
길이가 10미터 정도 되는 대형 차량이어서
침실도 주방도 거실도 널찍널찍 했다.
RV 차량의 가격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구입은 차지하고라도 단기간 빌리는 비용조차 만만찮았다.

호사스런 캠핑차 때문에 우리들의 잠자리가 잠시 왜소해보였다.
나는  또 "저 포도는 시다." 라며 높은 곳에 열린 포도를  포기하는
이솝 우화에 나오는 늑대의 지혜를(?) 빌려 와야 했다.
"집을 통째로 끌고 다니는 게 무슨 캠핑이람!"

잠자리를 마련하고 잠시 책을 읽는 사이 해가 저물었다.
우리는 책을 덮고 다시 바닷가로 갔다.
쇄잔해진 저녁 햇살이 그림자를 길게 늘이며 기울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듯 새들은 점점이 저녁 하늘을 날아다니곤 했다.

이윽고 서쪽 하늘이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노을은 점점 넓어지고 짙어져 갔다.
구름이 받아내는 하루해의 마지막 빛은 처연함을 넘어 외경마저 들게 했다.

노을은 정점인가 싶더니 급속히 사위어들었다.
그 사이로 어둠이 찾아들었다.
별이 돋아났다.

저녁을 먹고 노을빛을 닮은 불을 피웠다.
아내와 말없이 앉아 오래도록 불빛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밤새도록 거친 파도를 해변에 부려놓았다.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쉬임없이 땅을 흔들었다.
잠결에  마치 우리가 바다 한 가운데의 암초 위로 조난 당한 느낌이 들곤했지만
한번도 자리에서 일어진 않았다.
잠은 내내 포근했다.

아침이 왔다.
이웃집 부지런한 개구장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텐트의 천정이 어느새 환해져 있었다.

아침 바다는 새들의 차지인 듯 했다.
저녁에는 잘 보지 못했던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바다를 채우고 있었다.

새들은 조는 듯 움직임도 없이 해변 한쪽을 차지하고 있거나
아니면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둥둥 떠있기도 했고,
어떤 놈은 수면을 스치듯 가깝게 날고,
물 속에 머리를 박고 채 사냥을 하기도 했다.
한두 마리가 좀종 걸음으로 해변을 거니는가 하면
수십 마리가 줄지어 날아왔다간 날아가기도 했다.

아스라히 보이는 만(灣)의 끝까지 아내와 걸었다.
왕복 두 시간이 걸리는 길이었다.
걷는 내내 바람은 시원했고 햇살은 강렬했다.

저녁부터 아침까지 바다와 해변은 너무 평온했다.
특별날 것 없는 것만으로 완벽했다.
구태여 바깥 세상일에 대한 욕심을 끌고 들어올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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