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나라 이름 보고 고른 영화들

by 장돌뱅이. 2023. 3. 10.

넷플릭스나 디즈니, 쿠팡 등 온라인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이전의 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나라의 다양한 영화들을 접할 수 있게 된 건 즐거운 일이다. 가끔씩 미국이나 유럽, 일본 이외의 나라에서 제작한 영화를 의도적으로 보곤 한다. 그렇게 레바논, 필리핀, 브라질, 인도네시아의 영화를 각각 처음으로 보았다. 어떤 사전 정보나 특별한 기준을 가지고 고르지 않았지만 우연히 4편의 영화가 다 옛날 소설 『어둠의 자식들』처럼 분위기가 어두운, 사회 고발성 영화들이었다.

그런데 먼 나라의 영화 속 모습들이 크게 낯설지 않다. 
등장인물의 얼굴과 길거리 간판의 글자만 바꾸면 우리 이야기라 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국민 소득이 높거나 낮음에 상관없이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나 비슷한 것일까? 
그렇다면 인간의 윤리나 도덕의 개선이 동반되지 않는 경제 발전이란 인간에게 무슨 의미일까?
세상은 어떤 역사의 합목적성에 따라 진보하고 있기나 하는 것일까? 


레바논 영화 <<가버나움>>

레바논 가버나움의 빈민가 출신이며 12살로 '추정'되는 어린 소년 자인은 부모를 고소한다.
왜 고소했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자인은 대답한다.
"나를 태어나게 해서요."
자인에게 태어남은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부모는 자인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온갖 허드레 일을 시킨다.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아 자인은 정확한  나이도 모른다. 심지어 자인의 여동생을 나이 많은 남자에게 팔아버린다. 부모는 가난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여동생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던 자인은 이에 가출을 하여 에티오피아에서 온 불법체류 여성의 갓난아이를 돌봐주며 함께 지내게 된다. 어느 날 여성이 불법 체류자로 체포되어 돌아오지 않자 자인은 아이와 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나를 태어나게 한' 이유로 부모를 고발하는, 더 이상 비참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자인의 따뜻함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왜들 낳는가? 낳아서 왜들 최소한도의 돌봄조차 자식들에게 베풀지 않는가?



필리핀 영화 <<15살 칼렐>>

15살 칼렐은 엄마가 마약쟁이 애인과 집을 나가버린 뒤, 아버지가 다른 누나와 둘이서 산다. 칼렐은 HIV에 감염된 상태다. 이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칼렐의 아버지는 '근엄한' 사제이지만(사제이기에) 칼렐은 공식적으로 남이다. 가끔씩 학비 같은 것을 지원해줄 뿐 칼렐과 함께 살 수는 없다고 말한다.  집 주인과 싸움으로 경찰서에 갇힌 칼렐의 누나에 대해선  자신과 상관없다며 일말의 도움도 주지 않는다. 칼렐은 아버지 숙소의 유리창에 침을 뱉고 돌아선다. 하지만 칼렐이 갈 곳은 없어 보인다.

'2010년 이후 필리핀 청년층의 HIV감염이 170%나 증가했다'는 자막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공식적으로 진단확인된  사람만 기준한 것이라고 한다.
HIV 감염자에 대한 사회적 냉대와 방임이 상황을 더 가속시키는 것이다.

칼렐이 영화 <<가버나움>> 속 자인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 너무 무리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현실적인 힘이 될 수 없을 것 같고.


브라질 영화 <<7명의 포로>>

순진한 18세의 시골 청년 마테우스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러 다른 친구들과 함께 도시로 간다.   
꿈에 부풀었지만 현실은 인신매매에 이어진 노예노동이다. 감금과 폭력의 일상은 어처구니없게도 경찰과 유력 정치인의 비호를 받는다. 저항과 탈출 시도가 무모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마테우스는 점차 자신이 거부하던 가해자의 모습을 닮아간다. 
우뚝한 고층건물의 그늘에서 벌어지는 뿌리 깊은 조직적 폭력과 대물림,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가난.

엊그제 우리나라 돼지농장에서 일하던 한 태국 이주노동자 프라와세낭문추 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농장주는 10여 년을 함께 했던 '문추' 씨가 신병으로 숨지자 시신을 야산에 유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등록 노동자였던 '문추' 씨는 돼지우리 안에 마련된 숙소에서 생활해 오다가 죽어서도 최소한의 존엄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우리의 현실은 영화 속 브라질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가?
무력감을 느끼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데 수직의 절벽 같은 현실 앞에 무력해진다.


인도네시아 영화 <<복사기>>

영화 <<복사기>> 는 한 여학생이 파티에 참석하여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긴' 이후, 파티에서 찍힌 사진 속 모습이 품행 규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그 파티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가를, 대학교 복사점을 이용하여 거꾸로 추적해 나가는 영화다. 

인도네시아는 90년 대 초 회사일로 주재를 했던 곳이라 영화의 내용만큼  화면 배경이나 등장 소품에도 눈이 갔다. 인도네시아 사람과 말 특유의 몸짓과 표정과 억양, 거리 풍경, 오토바이, 고기완자 국수인 박소(Mee Bakso), 전통 의상 바띡(Batik) 등등.

특히 함께  학생과 면담을 하면서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는 대학교수의 모습은 옛날 나의 기억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인도네시아에 막 도착하여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았을 때 현지 직원과 외근을 나갔다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직원이 갑자기(?) 손으로 반찬을 밥 위에 올려놓고 다져서 입에 넣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그렇게 식사를 한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직접 대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나도 모르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던 모양이다. 직원은 그걸 읽었던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띠닥 빠빠(괜찮습니다)'라고 서둘러 말하고 같이 손으로 먹었다. 

음식을 먹는 것은 저마다 고유한 존재의 본질과 세계를 만들어가는 행위다. 그 행위의 방식과 특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소통하는 사회의 모든 요소일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과 함께 무언가를 먹는 행위에서 시작될 수 있다.(···) 하지만 (···) 상대가 먹는 음식이나 또는 먹지 않는 음식, 그 숭고한 음식이 조롱의 수단이자 공격의 칼날로 변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 낯섦이 배척이 되고 혐오로 커지는 상황을 우리는 무수히 보아왔다. 

-박경은,  『성스러운 한 끼 』중에서-

'낯섦이 배척이 되고 혐오로 커지는 상황'이 어디 음식이나 음식을 먹는 방식만이겠는가······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비가 온 뒤  (0) 2023.03.1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  (0) 2023.03.11
뗏목을 버린 후에  (0) 2023.03.08
친일 그리고 그후  (0) 2023.03.04
친구들은 자란다  (0) 2023.03.0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