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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뗏목을 버린 후에

by 장돌뱅이. 2023. 3. 8.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라.'
부처님의 이 말씀은 다양한 의미와 용도로 인용된다. 60대 중반을 넘긴 나 같은 은퇴 세대에겐 지난 삶의 방식을 털어버리고 이른바 새로운 '인생 이모작'을 시작하라는 경구(警句)로도 자주 쓰인다.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나의 직장 생활도 늘 숫자로 표시되는 목표치에 실적을 맞추려는 안간힘의 시간이었다. 나의  '뗏목'은 그것을 위해 떠돌아다닌 모든 발품과 거래처라는 인맥으로 엮은 것이었다. 

강을 건너고 난 후 뒤를 돌아보며 연연해 하진 않았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갔고 거래처도 변함이 없이 존재했다. 뗏목은 저절로 버려졌다.
정년퇴직을 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그냥 밤을 새워 보는 거라고 말하는 영화 속 주인공이 있었다.
왜냐하면 뒷날 피곤할 걸 염려해서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일을 해보고 싶었다. 헐거워진 시간을 반드시 꽉 채울 필요가 없는 일들.
아내와 함께 다니는 여행과 손자저하들과 뒹구는 기왕의 축복 위에 더할 수 있는 ······

절실하지 않고, 특별히 성취를 염두에 둘 필요는 없지만  남은 길을 가기 위해선  필요한 ······.
그리고 혹은 그래서 아름다운 어떤 일들 . 


제일 먼저 은퇴 전부터 조금씩 시작한 음식 만들기로 부엌을 '점령'했다.
"노노(no老)스쿨"이란 곳에서 1년 가까이 배운 것이 가장 큰 바탕이 되었다.

아내가 좋아했다. 
"당신이 아니고 내가 부엌에서 은퇴를 했네."
친구들에게도 '백수의 앞치마는 세계평화를 부른다'고 힘주어 말하며 다녔다.


어떤 일은 의도치 않는 우연으로 찾아온다. 코로나로 집에 갇힌 손자와 노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영상으로 수강하게 된 마술(魔術)과 색연필화 강좌가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졌다. 강좌 이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우여와 곡절'이 더해지면서 커뮤니티까지 들게 되었다.

손자를 위해 시작한 마술은 이제 어른들의 '놀이'가 되었다. 마술에 자잘한 일상의 이야기를 입혀서 올해는 작은 봉사 공연이라도 해볼 생각이다. 은퇴 후 이곳저곳에서 '강호의 고수'를 만난다.
유홍준교수의 말대로 하면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다.
그런 사실은 매사에 겸손하라는 교훈이 된다.
자칫 '메시 앞에서 드리볼 하는'  동네 조기축구회 선수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술동호회에도 데이비드 카퍼필드 같은 고수가 있었다.
이 분은 다양한 마술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술도구를 직접 만들기까지 한다. 


그림동호회는  내가 보기에 나를 빼곤 아예 다 '겸제 정선'이고 '피카소'다. 
도대체 이 모임에 왜 연필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나를 초대해 줬는지 의아할 정도다.
그분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림뿐만 아니라 그림에 필요한 도구들까지 세세하게 배운다.

요즈음은 아내와 여행 다녀온 곳을 위주로 그리고 있다. 언제까지 끝내야 하는 기한이 없고 미술선생님의 검사를 받을 필요 없는, 내 맘대로 내 능력껏 그리는 그림은 한가로움 그 자체다. 손으로 그리는 풍경은 여행의 기억을 오래 되살리게도 해준다.

캐나다 토론토
페루 마추피추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이 세간에 떠돈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중산층 기준이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배기량을 기준으로 하는 반면에 프랑스 퐁피두 대통령이 정책으로 내건 '카르테 드비(생활의 질)'는, 첫째 외국어 하나 할 수 있을 것, 둘째 스포츠 하나는 직접 즐길 수 있을 것, 셋째  악기 하나를 다를 수 있을 것, 넷째 남들과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 한 가지를 지닐 것, 다섯째 공분(公憤)에 의연히 참여할 것 등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적 능력이, 프랑스에서는 문화적 능력이 부족한 나는 어디서도 중산층이 되기는 애초부터 글러 보였다. 그런데 악기 하나는 다루어야 한다는 조건은 특별히 나의 열등감을 자극했다. 하지만 우아한 플루트나 쓰임새가 많아 보이는 기타는 무재주에 무노력을 타고난 내게는 비현실적인 먼 세상의 것들이었다.

몇 해전 누군가의 권유로 사두었던 칼림바를 최근에 꺼낼 일이 생겼다.
노노스쿨에 동아리가 생겨서 나같은 왕초보도 환영한다는 공지가 떴던 것이다.
그리고 어제 첫 수업을 받았다. 

칼림바는 두 손 안에 안정감 있게 잡히는 크기의 작은 악기다. 악기라기보단 장난감 같기도 하다. 엄지손가락으로 키 바(key bar)를 퉁기면 맑은 소리가 공명통을 통해 울린다. 음계는커녕 아무 소리를 내는 것조차 힘든 플루트나 손가락 끝이 아프도록 코드를 눌러대야 하는 기타 같은 악기에 비하면   겨우 한 시간을 배워 '나비야 나비야'를 컴퓨터 자판  독수리타법으로 두드리듯 칠 수 있었으니  나 같은 악기'맹'에게 딱 맞는 악기랄 수 있겠다. 앞으로 프랑스 중산층 조건에 한 가지나마 부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아내와 칼림바로 '533 422 1234 555'를 두드렸다.

은퇴하기까지 강을 건너온 '뗏목'이 힘들거나 헛되기만 했다는 뜻은 아니다. 즐겁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온전하게 책임질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더할 수 없이 고마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음식을 만들어 아내와 밥상에 마주 앉는 시간,  손자저하를 만족시키기 위해 찾게 되는 신기한 마술,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는 그림, '독수리타법'으로 따라가는 악기 따위에 마음이 움직인다.
아마 그런 것들이 사랑과 꿈이라는 삶의 본질을 건드리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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