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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샌디에고 걷기 12 - BALBOA PARK TRAIL

by 장돌뱅이. 2012. 5. 30.

걷기는 아내와 내가 만드는 가장 작고(?) 간단한 여행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의 걷기는 더욱 그렇다.
차나 비행기의 안전벨트 속에서 보내야하는 군더더기 시간이 없어
주어진 시간의 효용성이 높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 공원은 많을수록 좋다.
근본적으로 인간 이외의 생명이 깃들기가  힘든
시멘트 구조가 대세인 서울에서 살다온 아내와 내게
샌디에고는 도시 자체가 공원으로 보이지만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공원들은 부러움 섞인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중에서도 BALBOA PARK는 샌디에고를 대표하는 공원이다. 

초록의 잔디,
크고 작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정겨운 숲.
부드러운 흙길.
걸음걸음이 가볍고 산뜻하다.
발보아공원엔 곳곳에 여러 박물관이 도열하 듯 서 있지만
그곳을 들어가지 않고 그냥 공원을 서성이 듯 걷는 것만으로도
휴일 오후가 충분히 뿌듯해진다. 

팔짱 한번 껴 봐"

나는 결혼식 입장 포즈로 팔을 동그랗게 만들어 아내에게 내민다.
트레일을 걸으며 내가 종종 아내에게 하는 장난이자 애정표시다.
아내는 아줌마답지 않은 수줍음을 흘리지만
역시 아줌마다운 내숭의 눈짓을 보내며 내 팔을 잡는다.

어느 여행기에선가 나는 우리의
이런 '닭살행각'에 대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연애 시절 아내의 손을 잡아본 것만으로 가슴 뛰고 행복하던 때가 있었다.
   갑자기 세상이 만만해 보이고 몸에 기운이 솟아 무엇이건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시간이었다. 이제 이십여 년의 시간에 감정은 무디어져 아내와 팔짱을
   낀 것만으론 솔직히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진 않는다. 그러나 여행 중의 이 아침,
   모처럼 잡아본 아내의 팔과 팔을 타고 흐르는 아내의 체온은, 젊은 시절의 흥분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따뜻하게 온몸으로 전해져왔다. 그러면서 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중
   그 어떤 힘든 기억도 용서할 수 있을 것처럼 마음이 넓어지고 편안해져왔다.
   나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높고 푸른 하늘.
지상의 모든 빛을 모아 붉게 타는 노을.
해가 지고 난 뒤에 하나둘 돋아나는 별.
편안한 산책.
늘 가까이 있는 아내.
우리가 행복해야 할 이유는 그렇듯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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