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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샌프란시스코2 - 여기저기 이곳저곳

by 장돌뱅이. 2012. 5. 30.

어떤 대상이던지 사람들의 긍정과 부정, 좋고 나쁨의 평가가 있다.
앞선 여행기에 나온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금문교를 두고 이런 말을 듣기도 한다.

"크게 볼 것 없던데요. 사진이 멋있지 실물은 뭐 그냥저냥......"

아내와 내게는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사실 아내와 내가 어떤 여행지에 실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행 중에 아내와 나는 주어진 환경과 쉽게 타협하고
어떤 대상에대한 평가에 너그럽고 후해지고자 한다.
특별히 의도하지 않아도 여행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날카로운 각을 세운 눈초리로 사물을 훓거나
무료하기 그지없는 발걸음으로 대상에 다가서고 싶지 않고
특별한 것을 찾아내기위해 기를 쓰고 싶지도 않다.
그냥 널리 알려지고 쉽게 만날 수 있는 통속적인 것들과의
만남을 아내와 나의 기억 속에 소중하게 담고 싶을 뿐이다.

금문교를 보고 걷는 것으로 이번 샌프란시스코 여행의 중요한 일정을 끝낸 셈이었다.
적어도 이번 여행에서 나머지 일정은 보너스로 주어진 것이었다.
여행안내서는 샌프란시스코에 널린 볼거리와 즐길거리
그리고 먹거리의 다양성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이야기 했다.
우리는 금문교란 숙제를(?) 마친 느긋한 기분으로 그 중의 몇 곳을 돌아보았다.

먼저 우리의 숙소에 대해 말해야겠다.
최근에 들어 캠핑을 재개하면서 아내와 나는 저녁을 먹고
장작을 태우는 '불장난'에 재미를 붙였다.
어두운 밤, 밝고 따뜻한 불가에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은 행복하다.
많은 상념들이 불빛을 따라 감미롭게 너울거리다간 사라지곤 한다.

우연히 샌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캠프장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아내와 나는 바쁜 하루 일정과
저녁과 샤워를 마친 개운한 기분으로 즐기는 화이어링 FIRE RING 속의 불빛을 떠올렸다.
고개를 들면 도심의 휘황한 불빛이 볼 수 있으리라 상상했다.

RV 차량만이 아니라 일반 캠핑에도 아주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캠프장의 이메일은 우리의 상상에 확신을 주어 서둘러 예약을 했다.
캠핑장은 샌프란시스코에 지역 연고를 둔 미식축구팀 "SAN FRANCISCO 49ERS" 의
홈구장인 CANDLESTICK PARK STADIUM과 마주보고 있었다.
경기가 있는 날은 열성팬들로 캠프장이 가득 차는 모양으로
예약 취소가 불가하다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축구경기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캠프장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체크인을 하고 들어선 캠프장은 우리가 상상하던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RV 전용 캠프장이라고 해야 옳았다.
온통 아스팔트 바닥이었고, 캠프장은 뒷쪽 화단에 옹색스럽게 마련되어 있었다.
화이어링은 없었고 있다고 해도 캠프화이어를 할 환경은 아니었다.
이메일의 내용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잔디 위에 텐트를 칠 수 있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장과 세탁시설이 별도의 건물에 완비되어 있었으니까.
하지만 RV 전용캠프장에 부록처럼 딸린 텐트장은  
마치 초고층 호화아파트 그늘 속에 있는 낡은 판잣집처럼 상태적으로 궁색해보였고
아이엠에프 시절에 서울 시내 공원에 자주 눈에 띄던 노숙자 '필'이 나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황당해하다가 이내 원기르 회복하고 씩씩하게 텐트를 쳤다.
'여행 중엔 쉽게 현실과 타협하기 -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잠만 자러 들어오지 뭐.'
관리사무실의 배려로 RV 차량을 위한 포스트에서 전기를 연결하여
전기장판을 텐트 속에 깔고 잘 수 있었던 것이 아내를 위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샌프란시스코 하면 금문교 다음으로 내겐 스캇매켄지의 노래가 떠오른다.

  "샌프란시스에 가게 되면 잊지 말고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되면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예요......"
   (IF YOU A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IF YOU GOING TO SAN FRANCISCO
   YOU GONNA MEET SOME GENTLE PEOPLE THERE......)

머리 꽃을 꽂는 의미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감있고 활기찬 분위기의 샌프란시스코가
그려지는 노래다. 그 노래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유니언스퀘어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대를 도보와 전차를 타고 돌아보았다.
눈이 부시도록 화창한 햇살 속에 크고작은 건물들과
오고가는 사람들이 노래와 어울려 보였다.

초록은 싱그럽다.
에스플러네이드는 빌딩 숲속에 작은 오아시스처럼 숨어 있었다.  
잔디광장의 임시무대에서는 음악연주가 있었고 사람들은 여기저기 자유롭게 흩어져
잠을 자거나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쪽에 마틴루터킹주니어 기념관이 있었다.
인공폭포의 안쪽 벽면에 그의 연설문이 여러나라의 글씨로 새겨져 있었는데,
뜻밖에 한글이 보였다. 나중에 여행 책자를 보니 샌프란시스코와 자매결연을
맺은 나라의 언어를 새긴 것이라고 한다.
그의 기념관이 이곳에 있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빨리 물질중심 사회로 부터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로 변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기계와 컴퓨터, 이윤추구 및 재산권 등을 인간보다 더 중요시 할 때,
    인종차별주의, 물질주의 및  군국주의의 세 개의 기둥을 허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롬바르드 스트리트 LOMBARD STREET 는 급경사의 짧은 내리막길이다.
차를 꽅밭 사이를 지그재그로 운전하며 내려가야 한다.
1922년에 만들어졌다는 이 길은 이제 세계적으로 알려진 '관광명품'이 되어
부근에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제법 북적이기까지 한다.
작은 아이디어로 사람들에게 산뜻한 즐거움을 주는 길이다.
우리는 한번은 차로, 또 한번은  도보로 두 번에 걸쳐서 이 길을 오르내렸다.

샌프란시스코의 전차를 보며 변해가는 세상에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들이 주는 신선함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직선과 속도와 효율의 세태에 버팅기며
기꺼이 불편함을 받아들이자 풍요로운 정서가 살아난다는 것을.

세계 도처에 있는 차이나타운은 그들의 생활의 터전이자 하나의 박물관이다.
문화사절이다. 비록 그곳이 전통 중국문화의 정수를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차이나타운은 규모면에서 가장 큰 곳이라고 한다.
먼 이국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내며 살아가는 그들의 가게와
간판을 구경하며 아내와 나는 흥미로웠고 때로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차이나타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레이스성당.
육중한 석조 건물이 주는 중후함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압도한다.
초보신자로서 아직 기도의 형식에 어색하지만
아내와 함께 안에 들어가 잠시 기도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나의 기도의 대부분은 '감사합니다'이다.

기도 시간이 되면 내가 세상에 베푼 것보다
항상 받은 것이 많았음을 생각하게 된다.
제대로 한번 치열하게 세상을 위해 고민하며 살아오지도 않았는데
세상은 늘 과분할 정도로 내게 많은 것을 베풀어주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이렇게,
아내와 있다.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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