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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책『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by 장돌뱅이. 2023. 8. 23.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Survival of the Friendliest)』
(브라이언 헤어Brian Hare와 버네사 우즈  Vanessa Woods 지음,
이하 책.)
우선은 제목에서 따듯함이 풍겨난다. 각박한 세상에 '정 많음'이 살아남고 번성한다니 위로가 되기도 한다. 누구나 제발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세상은 적자생존의 논리가 우세해지기 시작했다.
학문도, 학교도, 기업도, 나라도, 그 속의 개인도 오직 세상의 틀에 가장 적합한 'the fittest'만이 살아남는다는 경쟁의 논리가 거셌다. 그러나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적자생존의 논리는 원래 다윈이나 근대 생물학자들의 인식과는 다른  내용임을 지적한다. 다윈과 근대의 생물학자들에게 '적자생존'이란 아주 구체적인 어떤 것, 즉 살아남아 생존 가능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며, 그 이상으로 확대될 개념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윈은 자연에서 친절과 협력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고 썼다. 다윈을 위시하여 그의 뒤를 이은 많은 생물학자도 진화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이상적 방법은 협력을 꽃피울 수 있게 친화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등만 기억하는 드러운 세상!"
몇 해 전 개그콘서트의 유행어처럼  대중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최적자(the fittest)에 의한 독식의' '적자생존'이라는 개념은 사실은 다윈이 생각하지 않았던 최악의 생존 전략'인 것이다. 

다정함은 일련의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 협력, 또는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행동으로 대략 정의할 수 있는데, 다정함이 자연에 그렇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 속성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서 다정함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는 단순한 행동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협력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등의 복합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협력은 아주 오래된 전략이다.

'친화력은 자기가축화self-domestication를 통해서 진화했다'고 책은 전한다. 
 자기가축화의 가설은 하나의 종이 즉흥적 감정반응과 상대에 대한 공격성을 자제하고 서로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을 강화하는 진화의 과정으로 나는 이해했다. (자기가축화의 개념은 나에게는 아직 좀 모호하다.
나는 책 서두의 '들어가는 글'과 1~4장 그리고 9장은  정독을 하고 나머지 장은 '대강 철저히(?)' 읽었다. 여러 실험의 내용이 내겐  지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기가축화의 개념이 뚜렷하게 파악되지 않은 건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육체적으로 혹은 지능적으로도 우세했던 호모에렉투스, 네안델타르인  등 다양한 인간 종들 중 호모사피엔스가  유일하게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번성한 이유는 자기가축화와 친화력(다정함)에 있다.  책은 다양한 동물들의 실험을 통하여 이를 설명한다.
(번역자는 책의 원제에 쓰인 'friendliest'를 글의 맥락에 따라 '다정함'과 '친화력'으로 나누어 번역했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같은 개념으로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그러나 우리 종이 지닌 최고의 미덕과 강점인 자기가축화와 친화력은 현실에서 목도되는 인간의  잔인성을 보면 의심이 간다. 인간에게는 자신과 같은 동질성을 지닌 집단 구성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만 느끼는 친화력의 반대급부로 이질적 집단이나 개인에 대해선  비인간화하는 '능력'이 동전의 양면처럼 있다고 책은 설명한다. 편견, 차별, 왜곡, 살육, 전쟁 등의 광기의 행태가 친화력과 공존한다는 것이다. 책 말미의 질문처럼 '자신이 속한 가족과 친구, 부족을  향한 편협한 다정함이, 더 넓은 집단을 향한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될 수 있을까?'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생각하고 사랑하고 아픔을 느낄 능력에 의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개에게서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 사랑이 다른 사랑만 못하다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을 것이다. 우정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평등한 사상이다. 개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가 될지 예상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구석기시대를 지배하는 강력한 포식자이던 시기에 그들은 송곳니 매서운 육식동물에서 개로 진화했다. 개는 그들 종의 강력한 성공 무기였던 두려움과 공격성을 사용하는 대신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될 만한 충분한 공통 기반을 찾아냈다. 다리가 둘이건 넷이건, 검건 하얗건, 그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데는 그런 차이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적어도 나의 삶은 바뀌었다.
우리 종이 다른 사람 종들을 정복할 무기를 생각해 낸 이래로 우리는 지능을 과하게 강조해 왔다. 우리는 지능을 토대로 확고한 구분선을 긋고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잔인한 고통을 가해왔다. 오레오(저자의 반려견)와 나눈 우정과 사랑으로 나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다리가 둘이건 넷이건, 검건 하얗건, 그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데는 그런 차이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는 말을 되새김질 해본다. 우리의 긍정적인 미래가 거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아무리 리오넬 메시가 축구를 잘한다 하더라도 혼자서는 의미가 없지 않은가. 
축구는 결국 'the fitter'와 'the less fit'의 어울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삶이 그렇듯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영상 독서 토론 모임인 "동네북"의 8월 선정 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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