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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영화 <<낯설고 먼>>

by 장돌뱅이. 2023. 8. 19.

흑인 청년 카터는 길에서 백인 경찰에게 검문을 당한다. 검문을 받아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간밤에 만난 매력적인 여인 페리와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가는 참이었다.
집에는 반려견이 그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다.

경찰은 카터가 피우는 담배가 그냥 담배인지를 의심하고  카터가 지닌 돈의 출처를 수상히 여겼다. 커터는 부당함에 항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거친 폭력이었다. 옆에 있던 노점상이 '놔줘요. 그가 아무 짓도 안 했잖아요'라고 소리를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경찰에게 깔린 카터는 힘없이 '숨을 쉴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다 의식을 잃는다.  
('I can't breathe!'라는 이 말에 사람들은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김 빠진 사이다를 만드는 영화의 '스포'는 나의 글 이전에 이미 현실에 있다.)

눈을 떠보니 다시 페리의 집 침대로 돌아와 있다. 집에 가려고 또 다시 나가 좀 더 공손하게 경찰을 대해 보지만 이번엔 총에 맞는다. 그리고 다시 페리의 집에서 깨어나는 상황이 반복된다. 도망치기도 해 보고, 항의도 해보고, 대화도 시도해 보지만 결말은 항상  총에 맞는 무한 반복이다.
"내가 뭐라고 하든, 뭘 하든, 어떻게 하든, 그 남자는 그냥 날 죽이고 싶은 거야."
카터의 깨달음은 절박한 비명이다.

카터는 어떻게 해야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까?
"방법을 찾아낼 거야.  아무리 오래 걸려도 몇 번을 반복하더라도 상관없어. 어떻게 해서든  난 우리 강아지한테 돌아갈 거야."

희생자들의 이름이 나오는 엔딩크레딧 앞에 카터의 그런 결기와 다짐은 무색해 보인다. 

싸움을 말리던 에릭 가너, 현관을 수리하던 미셀쿠소, 공원에서 놀던 타미르 라이스, 자동차 부품을 사러 가던 월터 스콧,  정신 질환을 앓던 타니샤 앤더슨과 너태샤 매케나, 현관문을 열던 베티 존스, 저녁을 먹고 돌아가던 필랜도 캐스틸, 자기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던 보섬 장, 집에서 조카를 돌보던 아타티아나 제퍼슨, 주차장으로 들어가던 에릭 리즌,  자기 차에서 자고 있던 레이샤드 브룩스, 걷고 있던 이젤 포드, 집으로 걸어가던 일라이자 맥클래인,  자기 침대에서 자던 도미니크 클레이턴과 브리오나 테일러, 그리고 식료품점에 갔던 조지 플로이드 등등.
'이들은 많은 이름 중 일부에 불과하다'는 마지막 문장은 묵직하다.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을 되풀이하는 우리 사회의 여러 일들도 떠오른다. 그런 '무한반복'을 지속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낯설고 먼' 돈과 권력, 구조와 논리, 법과 상식들도 함께.  
영화는 말한다.

SAY THEIR NAMES!
REMEMBER THEIR NAMES!

32분의 짧은 영화 <<낯설고 먼>>은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단편영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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