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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샌디에고 걷기 14 - LAKE POWAY

by 장돌뱅이. 2012. 5. 30.

 

앞마당에 오래 된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집에 살고 싶다고 아내와 말했던 적이 있다.
노란 감꽃이 지고나면 그 자리에 감꽃만큼이나 무수히 많은
감들이 샛노랗게 익어가는 가을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POWAY 호수로 가는 길 감나무농장이 있었다.
아니 일부러 감나무 농장을 돌아  POWAY 호수로 갔다.
눈에 보이는 계절의 변화가 그다지 뚜렷하지 않은 샌디에고에서
감은 가을이 무르익었음을 알려주 듯 가지마다 휘어지게 달려 있었다.
계절은 계절 아닌 것이 없게 한다는 말.
요즈음 와서 더욱 실감나는 말이다.
 

 

감나무 앞에 아내를 세우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푸른 하늘과  노란 감들의 선명한 색감이
뷰파인더를 통해 진하게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LAKE POWAY는 푸른 하늘을 하나 가득 담은 채로 잔잔했다.
호수를 둘러싼 높고 낮은 산들의 황량한 잿빛은 이미 여름 전에 시작된 것이지만
청청한 호수에 그림자를 담근 채 늦가을의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가을이 오면 호수 내의 어족들이 늘어나는지 송어낚시가 허용된다는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평상시에는 송어를 제외한 배스나 블루길 (우리나라에서는 토종생태계를 위협하는 외래어종으로
알려져 있는) 등만 잡을 수 있는 모양이었다.

자연보호를 위한 미국의 규제는 엄격해 보인다.
바다낚시를 나갔던 한국인 가족이 기준치보다 작은 크기의 고기 한마리를 고기통에 넣었다가
해안경비대의 검문에 걸려 무려 400불이 넘는 벌금을 물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사실 그 고기는 어린 아이들이 모르고 잡은 것이었음에도).

그런 한편으로 일회용용품들과 분리수거되지 않는 쓰레기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자연보호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보인다.
하기사 작은 물고기나 사슴 한 마리, 강아지나 고양이의 ''행복'에는 그토록 호들갑을 떨면서도
남의 나라 사람 사는 마을에는 거침없이 최신형 폭탄을 날리는 그들의 '평화와 자비'에
분노를 넘어 냉소적이 된 지는 오래 전부터의 일이지만 말이다. 
 

 

호수를 따라 커다랗게 한 바퀴를 도는 길은 한시간 정도가 걸렸다.
드문드문 오고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 한적한 길이었다.
계절을 따라 오고가는 손님들인지 아니면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원주민인지는 알 길이 없는
한 떼의 오리들이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허공으로 솟아오르다
저 편으로 휩쓸리 듯 내려앉곤 했을 뿐이다.
 

 

 

 

 

 

나는 아내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사진을 찍었다.
배경과 아내와의 거리를 가늠하며 셔터를 누르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아내의 모습과 함께 잡힌 모든 풍경은 추억이란 확장자를 달고
기억 속으로 들어온다.

호수의 수면은 무수한 잔물결로 일렁였다.
호수 한 가운데로 배를 저어오는 낚시꾼의 모습이 가을의 정취를 깊게 했다.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왔을 땐 어느 새 저물어 가는 저녁해가  산그림자를
호수 위로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산다는 일 또한 어느 시공간을 걷는 일일 터이니

오늘 같은 날의
오늘 같은 길을
오늘처럼
아내와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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