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이 극성이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감염률이 더 높다고 한다.
손자 2호에 이어 1호가 독감을 앓아 두 번이나 글램핑을 못하게 하더니 이번에는 딸아이가 독감 판정을 받았다. 형태가 다른 독감은 상호 면역력이 없다고 해서 지난 코로나 사태 때처럼 아내와 내가 딸아이네로 가고 딸아이가 혼자 우리 집으로 왔다.
자식이 아플 땐 그 곁을 '먼동이 하얗도록' 지키고 정작 자신이 아플 땐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홀로 격리 생활을 감수하는 것이 부모 된 자의 본능이자 도리인가 보다.
오후 눈이 내리다 멎더니
벽 속에서 옆집 아기가
저녁부터 기침을 시작했다
조금도 쉬지 않고 콜록콜록
두 다리와 가슴, 배가
흔들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공중으로 쉴새없이
올라갔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새벽녘까지
감기가 아기를 보채더니
담 밑에 눈처럼 잠이 들었다
먼동이 하얗게 밝아왔다
-고형렬, 「감기」-
손자저하들은 물론 그런 상황과 상관없이 아내와 나의 등장에 환호를 했다.
어린이집에서부터 만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쉬지 않고 떠들던 2호는 집에서도 늦은 밤까지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부산을 피우고 재롱을 떨었다.
"하부지· · · 하부지 · · · 하부지 · · ·"
끊임없이 할아버지를 불러 아내와 도대체 몇 번을 부르는가 세어보기도 했다.
대화의 3분의 1은 할아버지였다.
1호가 좋아하는 방과후 교실에서 공개수업이 있어 처음으로 학교 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딸아이 또래인 젊은 엄마들 사이에 혼자 할아버지로 앉아야 해서 다소 어색했지만 1호의 학교생활을 보는 즐거움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1호는 바둑의 포석을 배우는 초보 단계지만 자발적으로 손을 들고나가 걸침과 붙임, 젖힘과 이음, 날 일(日) 자와 눈 목(目)의 행마 등을 제법 의젓하게 설명했다. 바둑은 장기나 보드게임과 달라 기초부터 잘 다져가며 배워야 하기에 나도 1호에게 제대로 된 바둑을 가르쳐주기 위해 포석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 하나 생각해 보기도 했다.
싫어하는 게 별로 없는(아내는 나를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제발 나처럼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은 되지 말기를!) 1호가 요즘 빠져있는 것 중의 하나가 공기놀이다. 웬 공기? 알아보니 담임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공기를 나누어주며 쉬는 시간에 놀라고 하여 삽시간에 반 아이들 사이에 유행되었다고 한다.
1호를 위해 공기놀이 세트를 사다 주었다. 분란을 막기 위해 아직 공기놀이를 모르는 2호에게도 하나를 사다 주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여자 아이들만 놀던 놀이임을 강조하는 건 무의미해 보였다. 놀이는 놀이일 뿐이다. 1호는 20년을, 나는 50년 내기를 정하고 아슬아슬하게 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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