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물거리던 날씨가 비를 내리기 시작해서 우산을 들고 손주저하 하교 시간에 맞춰 마중을 갔다.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떠들며 나오는 저하와 아는 척을 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저하에게 물었다.
"누구야? 아빠야?"
저하는 기가 차다는 듯이 대답했다.
"야! 딱 보면 모르냐? 할아버지잖아? 어떻게 아빠야?"
그런데 또 다른 친구가 끼어들었다.
"동안이시네!"
이런 말을 손자 친구, 그것도 초등 1학년에게 듣다니!
끝에 '요' 자도 붙이지 않은 묘한 어감의 말투였다.
하긴 '요' 자를 붙였다 해도 좀 황당(?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별다르게 대꾸해 줄 말이 없어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을 하니 옛날에 있었던 비슷한 일 하나를 상기시켜 주었다.
오래전 처갓집에서 산책을 나갔다가 아파트 놀이터에 앉아 손아래 처남과 무슨 이야기인가를 나눌 때였다. 옆에서 혼자 흔들흔들 그네를 타던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여자 아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처남에게 다가와 먹고 있던 과자 하나를 권했다.
"아저씨, 이거 하나 줄까요?"
처남은 당연히 '고맙지만 너나 먹어라'고 사양했지만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하는 수 없이 처남이 어정쩡하게 과자를 받아 들었다.
그러자 이번엔 옆에 있는 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아이가 물었다.
"오빠도 하나 줄까?"
그 말에 나보다 처남이 먼저 뒤로 넘어갔다.
처음 본 그 여자 아이는 나보다 어린 처남에게는 '아저씨'라고 부르며 존댓말을 쓰고, 왜 나에겐 '오빠'라고 부르며 반말을 썼을까? 처남의 입을 통해 이 이야기는 처갓집에선 '전설'이 되었다.
살다 보면 예상치 않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는 날이 있다. 그런 소소한 일들을 나 혼자 누리는 행운인양 담아두고자 하는 의식적 노력은 하루하루를 즐겁게 만드는 지혜가 된다.
열 만큼의 슬픔이나 걱정 따위를 없애기 위해 반드시 열 만큼의 기쁨과 환희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하지 않던가. 모래알 만한 즐거움들이 모여 바위 만한 시름을 견디는 항체를 형성할 수도 있으리라.
단골식당에 12시 전에 도착해
번호표 없이 점심을 먹고
서비스로 나온 생선전에 가시가 하나도 없고
파란불이 깜빡이는 동안 횡단보도를 무사히 건너
"환승입니다" 소리를 들으며
(교통비 절약했다!)
버스에 올라타
내가 내릴 곳을 지나치지 않고
내가 누르지 않아도 누군가 벨을 눌러
뒤뚱거리지 않고 착지에 성공해
신호에 한 번도 걸리지 않고
익숙한 콘크리트 속으로 들어가
배터리가 떨어졌다는 경고음 없이
현관문이 스르르 열리는 날
- 최영미, 「운수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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