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먹고 싶은 게 생각났어."
텔레비전에서 타이베이 여행기를 보다가 아내가 말했다.
타이난 (臺南)지역의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올 때였던 것 같다.
"어떤 거?"
"오징어볶음과 파스타, 그리고 딤섬"
딤섬은 사먹어야 하지만 나머지 두 가지는 내가 만들 수 있는 음식이라 망설일 필요가 없다.
"오케이! 장을 봐다 바로 만들어 줄게."
막연한 '맛있는 거'보다 구체적인 목표 메뉴가 있는 것이 음식을 준비하는 쪽에서는 훨씬 편하다.
(부엌을 접수하기 전 나는 '맛있는 거 좀 해줘'라고 막연한 요구를 자주 던져 아내를 괴롭힌 바 있다.)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대개 '아무거나' 먹는다. 냉장고를 뒤져 짜투리 음식들을 모아 비벼 먹으며 재고정리를 하거나 라면 따위의 즉석식품으로 때운다.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는 욕구의 선택이 아니라 배고픔 해소라는 본능으로 삼켜질 때 그 음식은 '먹이'가 된다.
음식은 '함께'와 나눔이라는 전제가 있어 '먹이'와 구분된다.
(물론 자신만을 위해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어 깊은 음미를 하며 먹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도 '자신'이라는 또 다른 자아와 함께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백수가 되고 나서 내게 부엌은 놀이터와 비슷한 장소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듯 나는 주로 아내와 딸 부부와 손자들이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논다'(음식을 만든다). 그들의 입맛을 떠올리며 불의 세기를 가늠하고 끓이는 시간을 조절하며 찌고 조리고 볶고 튀긴다. 나 역시 혼자 있을 때는 음식을 만들지 않고 '아무거나' 먹기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것도 누군가와 함께 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결국 음식을 만들거나 먹는 일에는 어디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라는 환경이 개입한다.
두 가지 일 모두 정서적 행위라는 동전의 양면이다.
아내가 딤섬을 이야기한 건 '여행 지수'가 높아졌다는 상태일 수 있다. 그것도 아마 태국을 향한.
딤섬은 홍콩이나 중국 남부 지역이 원조겠지만 아내는 태국 방콕 반얀트리 호텔 "바이윤"이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더차이나 하우스"의 딤섬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생오징어를 사러 이마트에 갔다가 태국산 망고를 보았다.
딤섬과 망고는 거리가 멀지만 같은 태국이라는 생각에 두 개를 샀다.
그리고 디저트가 아닌 에피타이저로 먹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오징어볶음은 내가 『최고의 요리비결』 을 보고 만든 것이다.
아내와 나는 이걸 밥 위에 올려 비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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