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니 시골에서 사는 겨레붙이와 지인들이 이것저것을 보내주었다.
내 손으로 농사를 지은 것도 아니면서 마치 내가 추수를 한 것처럼 가을이 풍성했다. 감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단감과 홍시를 사 먹고 나니 아내의 친구가 자기 밭에서 딴 대봉을 한 박스나 보내주었다.
귀촌을 한 누나는 육수를 내고 삼계탕에 넣을 수 있는 오가피나 엄나무에, 말린 토란 줄기, 고사리, 호박고지와 깨끗하게 씻고 말린 들깨를 보내주었다.
들깨는 재래시장의 방앗간에 가서 거피(去皮)를 하여 가루를 만들고 또 기름도 짰다.
그 들기름과 들깨가루로 고사리와 토란대를 볶아 밥상에 올렸다.
'문제'는 밤(栗)이었다. 올해는 밤이 흔했다. 친정이 시골인 앞집 여주인에게서도 받고, 딸아이도 어디서 얻었다며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거기에 누나가 보내준 토종밤까지.
토종밤은 크기가 작아서 숫자가 많았다.
손자저하들에게 밤죽을 끓여주고 라떼도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두 분의 저하가 모두 별로라고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딸아이집에도 냉장고에 밤이 많아서 우리집 밤을 소진하는 일은 천상 아내와 나의 몫이 되었다. 김장을 위해 냉장고에 공간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는 마지막 날, 어쩔 수 없이 밤을 삶고 속을 숟가락으로 파내고 지퍼락에 담아 냉동실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