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으시시 추워지니 청국장 생각이 난다.
아내와 나는 새 김장을 담그기 전 마지막 남은 지난해 김치를 기꺼이 청국장에 넣어 끓였다.
꼬리한 냄새 뒤에 구수하고 은근한 뒷맛이 이어지는 청국장에 스며든 신김치는 환상의 조합이다. 통닭에 치킨, 삼겹살에 소주, 파전에 막걸리, 돼지고기 수육과 새우젓, 된장찌개에 열무김치의 조합과 같다.
된장도 그렇지만 청국장도 다른 재료들과 다투지 않는다.
"신 김치, 무, 대파, 양파, 마늘, 고추, 호박, 버섯, 시래기, 두부, 조개류, 멸치, 고기 등 그 어느 것도 마다하지 않고 모조리 품에 안는다."(김화성의 글)
그 때문에 신김치 청국장찌개처럼 넣는 재료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다.
그냥 청국장찌개나 된장찌개라고 하면 정체성을 가늠할 수 없게 된다.
콩 발효 식품의 통칭은 한자로 시(豉, 메주, 된장, 청국장)라고 한다. 우리 문헌에서 '시'는 『삼국사기』에 왕가의 폐백품목의 하나로 처음 등장하며, 발해의 기록에서 병사들의 군량으로 나온다고 한다.
'시'는 나라(奈良) 시대의 일본에 건너가 고려장으로 불렸고 나중에 낫도(納豆)가 되었다.
청국장은 물기가 적은데다 쉽게 뭉쳐서 가지고 다니는데 편리하고 오래도록 상하지 않으며 요리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다. 게다가 고단백이라 적은 양으로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이동휴대음식이나 전투식품으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청국장이라는 이름이 옛날에 '전국장(戰國醬)'이었다거나 병자호란에 참전한 청국 병사들의 주된 군량이었던 데서 생겨났다는 설이 힘이 있어 보인다.
"나는 콩으로 만든 모든 음식을 좋아한다. 된장(찌개)과 두부, 콩국수 같은 것들.
그중에서도 된장찌개를 가장 좋아한다. 아내는 내가 '물에 된장만 풀면 맛있어 한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청국장만은 예외였다. 맛에 앞서 느껴지는 냄새 때문이었다. 8년의 연애 기간이 있었음에도 아내는 청국장에 대한 나의 식성을 알지 못했는지 (하긴 청국장은 데이트를 하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신혼 초 어느 날 퇴근을 하니 청국장을 끓여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된장을 좋아하니 청국장도 당연히 좋아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파트 현관문을 여는 순간 집안에는 청국장 특유의 냄새가 가득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모든 창문을 열어젖혔다. 청국장에는 한 번도 숟가락을 대지 않았다. 갓 결혼한 신부의 정성 어린 시도를 무참히 짓밟는 '폭거'를 자행한 것이다. 아내는 그 뒤로 청국장에 대한 나의 식성이 바뀌었음에도 20년이 넘게 청국장을 끓이지 않는 것으로 나의 경거망동에 대한 단호한 응징을(?) 가했다."
- 이 블로그 아래 글 중에서 -
소꿉장난같이 꿈을 키우던 부엌
19공탄 깔고 앉아 자지러지던 뚝배기
겸상 가운데 돗자리 꽃방석에 앉혀놓고
총각김치 경쾌하게 깨물던 단칸방
그것이 행복이었던 것을
난기류에 밀려 변방 에돌다
빌딩 숲에 정박한 빛바랜 부평초
자글자글 진동하던 그 냄새가 마냥 그립다
- 권오범의 시, 「청국장」 중에서 -
언제부터인가 좋은 음식이라고 하면 대부분 항암작용이 있다는 말이 꼭 나온다.
청국장이나 된장도 그렇다. 콩에 들어있는 트립신 인히비터라는 성분이 항암 작용을 한다고 하고 청국장균에는 뇌경색과 심근경색 요인인 혈전을 용해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올 겨울에는 아내와 '배반의(?) 추억'이 있는 청국장, 그리고 그걸로 만든 찌개를 많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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