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한국

잘 먹고 잘 살자 25 - 서울의 청국장 식당 3곳

by 장돌뱅이. 2013. 8. 14.

나는 콩으로 만든 모든 음식을 좋아한다. 된장(찌개)과 두부, 콩국수 같은 것들.
그중에서도 된장찌개를 가장 좋아한다. 아내는 내가 '물에 된장만 풀면 맛있어 한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청국장만은 예외였다. 맛에 앞서 느껴지는 냄새 때문이었다. 8년의 연애 기간이 있었음에도 아내는 청국장에 대한 나의 식성을 알지 못했는지 (하긴 청국장은 데이트를 하면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신혼 초 어느 날 퇴근을 하니 청국장을 끓여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된장을 좋아하니 청국장도 당연히 좋아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파트 현관문을 여는 순간 집안에는 청국장 특유의 냄새가 가득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모든 창문을 열어젖혔다. 청국장에는 한 번도 숟가락을 대지 않았다. 갓 결혼한 신부의 정성 어린 시도를 무참히 짓밟는 '폭거'를 자행한 것이다. 아내는 그 뒤로 청국장에 대한 나의 식성이 바뀌었음에도 20년이 넘게 청국장을 끓이지 않는 것으로 나의 경거망동에 대한 단호한 응징을(?) 가했다.

미국에서, 그것도 아파트에서, 청국장을 끓이는 것은 대단한 모험일 수 있다.
음식물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위아래층의 이웃들이 신혼 초의 나보다 더 호들갑을 떨며 관리 사무실에 '악취발생'으로 신고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미국에서 음식에 대한 오해는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얼마 전 LA카운티의 보건국은 후드(연기 배출) 장치 없이 찌개류나 전골류를 식당의 고객 테이블에서 끓이는 것을 금지했다. 냄새와 연기가 비위생적이라는 이유였다. 식당 관계자들은 음식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고 반발했다는데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는 모르겠다.
김밥이나 떡을 상온에서 보관, 판매하는 것을 금지시킨 적도 있었다. 이건 한인 사회의 반발로 4시간 이내로는 상온 보관 판매가 가능하도록 관련 법이 개정되었다고 한다.

이야기가 좀 빗나갔지만 세상에 불량식품은 있을지언정 혐오식품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있다면 익숙하지 않은 음식과 익숙한 음식이 있을 뿐이다.
예전에는 먹지 않았던, 그리고 미국에서는 쉽게 먹을 수 없는, 그러나 지금은 좋아하고 한국에서는 흔한 음식인 청국장을 몇 곳에서 즐겨보았다. 아내는 신혼 시절 나의 횡포를 잊지 않고 이런 식당에서 맛있게 청국장을 먹는 내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한다.

된장은 보통 정월에 담가 100일 이상 숙성시켜 봄에 먹는다. 청국장은 사나흘이면 먹을 수 있다. (···) 청국장은 무르게 익힌 콩을 질그릇에 볏짚을 몇 가닥씩 깔면서 퍼 담는다. 질그릇 위엔 솜이불이나 담요를 덮어씌운다. 그다음엔 그것을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띄운다.(···) 볏짚은 메주나 청국장을 띄울 때 '마법의 열쇠' 노릇을 한다. 볏짚에선 발효가 잘되게 하는 바실루스(Bacillus) 균이 산다. 그것들은 탱글탱글 콩콩통통 튀는 노란 콩들을, 능글능글 뉘엿뉘엿 곰삭게 만든다. 콩과 콩 사이에서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세월의 이끼를 깐다.

-김화성의 글 중에서 -

1. 종로구 필운동 사직분식

사직파출소 맞은편에 있는 작고 허름한 외관의 식당이다. 테이블이 내외부에 모두 해야 대여섯 개만 있다. 고등어조림을 포함한 몇 가지의 반찬과 함께 청국장이 나온다.
청국장이 뚝배기가 아닌 '스덴' 국그릇에 담겨있는데,
왠지 이 소박한 식당에서는 그게 더 잘 어울린다.
청국장 이외에 두부찌개도 이 집의 주 메뉴이다.
(전화 :736-0598)

2. 강남구 신사동 전주청국장

지하철 3호선 신사역 4번 출구에서 잠원동 쪽으로 가다 보면 역시 냄새 때문에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도시적 감각에 맞추기 위해 청국장 특유의 냄새를 순화시켰다고 하지만 냄새를 완전히 없앨 순 없겠다.
아니 냄새가 없으면 청국장이 아닐 것이다.
청국장을 주문하면 고추장과 참기름이 담긴 대접이 함께 나온다.
청국장과 곁들여 나오는 무생채와 콩나물, 상추무침 등을 넣어 비벼먹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젊은 날의 나처럼 청국장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무난히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청국장 이외에 간장게장과 오징어 볶음 낙지볶음도 메뉴에 나와있다.
(전화 : 02-525-6919)

3. 송파구 가락동 문경집

원래는 "문경 산골메밀묵집"이나 줄여서 문경집으로 부른다. 식당 이름에도 나와있으니 메밀묵이 이 식당의 대표 메뉴이겠으나 아내와 나는 청국장을 먹으러 갔다. 걸쭉한 묽기의 청국장 속엔 그냥 먹어도 좋을 것 같은 농도 짙은 구수함이 배어있었다.
8호선 송파역 1번 출구로 나가 대림아파트 2동까지 걸어가야 한다.
(전화:02-443-665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