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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잘 먹고 잘 살자 22 - 충북 옥천 구읍할매묵집

by 장돌뱅이. 2013. 8. 9.

 

 

10 년 전 쯤 아내와 나, 딸아이는 옥천의 구읍할매묵집을 찾은 적이 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울산에 살았고 서울에 본가와 처가가 있는 탓에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가 있으면 일년에도 몇 번씩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오르내려야 했다.
울산에서 서울까지는 편도 5시간 정도가 걸리는 터라 보통 중간에 한번쯤 휴식을 취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 나물에 그 밥'인 고속도로휴게소로 들어가기보다는 잠시
고속도로를 벗어나더라도 인근의 가볼만한 곳을 찾아 구경을 하고 휴식과
식사를 동시에 해결하곤 했다. 편한 대중교통 대신 직접 차를 몰고 나선
이유는 짧으나마 그런 답사를 즐기기 위함이었다.

옥천은 그런 여정에 알맞은 곳이었다.
우선 서울과 울산의 중간지점이어서 휴식을 갖기에 적당했고,
또 고속도로에서 매우 가까워서 시간 손실이 크지 않은 곳인데다가,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의 큰 봉우리인 시인 정지용의 아담한 생가가
복원되어 있어서 잠깐 사이에 둘러 볼 수 있는 답사처로는 알찬 곳이었다.

정지용 생가 가까이 있는 구읍할매묵집은 그렇게 해서 가보게 된 집이다.
그러나 그 날 우리는 묵을 먹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찰진 도토리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식당으로 들어서니 뜻밖에 불 꺼진 썰렁한 기운이 느껴졌다.
잠시 황당해하는 우리에게 할머니는 장사를 할 수 없다며 미안해했다.
토종 도토리가 떨어져 묵을 쑤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해해 주세유. 귀헌 손님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아무 중국산이나
사다가 만들 수는 없잖아유.”

음식에 대한 기대감이 사그라지면서 우리는 더욱 고파진 배를 붙들고
돌아서야했지만 할머니의 음식에 대한 정직함과 뚝심에 감동을 받았다.
중국산도 중국인들에게는 국산일 터이니 묵을 만들면 큰 차이가 없을 것
같기도 한데다, 누구나 한 푼의 돈을 탐하여 중국산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팔지 못해 아우성인 세태에 비추어 할머니의 고지식함은 마치 심지 깊은
선비의 지조처럼 고고하게 느껴졌다.

흔히 자신의 허물을 세상 탓으로 돌리며 살지만,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누가 알아주건 말건 그렇게 자신이 세운 기준과 도리를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2006년) 그럴까 내심아내는 조바심 치며 갔더니 다행이
문이 열려 있었다. 아내는 자리에 앉으며 식당의 밥상을 가리켰다.
앉아서 먹게 되어 있는 식당에는 여타의 식당처럼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큰 상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가정집에서 쓰는 옻칠한 나무 밥상들이
정감있게 놓여 있었다.

메뉴로는 도토리묵과 메밀묵이 있어 우리는 각각 한 가지씩 시켰다.
채를 썰은 묵 위에 다진 김치와 김가루 등의 양념을 얹은 대접에 별도로 나온
육수를 적당량 붓고 거기에 양념장으로 간을 맞추면 된다.
나는 거기에 밥을 더하여 묵밥으로 만들어 먹었다.
곁들여 나온 깻잎이며 고추절임도 할머니의 솜씨가 배인 듯 개운한 맛이었다.
아내는 할머니에게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진다며 살가워했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에 있다.
전화는 043-732-185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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