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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영화 <<더 웨일>>

by 장돌뱅이. 2024. 1. 3.

너무 왔다는 걸 알았을 때
돌아가고 싶었다

숲은 푸르렀고
푸르름이 더하여 검붉었다
한껏 검붉었다가 어두워지면

털이 많은 짐승이 먼 산기슭에서 잠들었다

잠잠해야지
그래야지
어쩌면 그런 날이 안 올지 몰라
숲의 술렁거림을 굽어보면
후회는
어디 아픈 듯
뒤늦게 따라왔다

조금 따라오다가
어느 산모퉁이로 접어들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날마다 눈뜨고 감는 일처럼
집으로 갈 수 없는 후회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  박미란, 「후회」-

넷플릭스에서 본 올해 첫 영화<<더 웨일>>.
제목인 '고래'만큼이나  큰 몸집의 초고도비만 상태인 찰리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더 웨일(고래)'은 초고도비만인 사람을 가리키는 속어라고도 한다.

영화는 찰리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 며칠의 일상을 보여준다. 비만으로 인해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찰리는 병원에 가는 것도 거부하고 음식 조절도 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고 있다. 
버틴다기보다는 삶을 연장하는데 큰 미련이나 애착이 없어 보인다.

오로지, 그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인 딸과 관계 회복을 향한 마음만큼은 지극하다. 자신의 치료에 도움이 될 만큼의 돈을 모았으면서도 찰리는 딸에게 주려고 모아두기만 할 뿐 일절 쓰지 않는다.
"알아야겠어! 내 인생에서 잘한 일이 하나라도 있단 걸!"
무너지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확신을 얻으려는 그의 마지막 노력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찰리는 딸이 8살 때  동성과 새로운 사랑을 위해 아내와 딸을 버리고 떠난 잘못이 있다. 그 사랑마저도 비극으로 끝나고, 종교에서조차 위로를 받을 수 없는 그에게 남은 것은  폭식으로 비대해진 몸집과, 후회와 자책으로 스스로를 가둔 은둔뿐이다. 그는 동영상 강의로 생활비를 벌면서도 자신의 외모가 나오는 영상은 공개하지 않는다.

"글은 수정할수록 많이 나아진다."
찰리는 영상 강의에서 그렇게 말했다.  삶도 그럴까?
마지막 순간의 짧은 '화해'가 지난 과거의 잘못과 실수를 덮을 수 있을까?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가족은 물론 주위와 상처나 위로를 주고받으며 살게 마련이다.
다만 후회는 물론 반성으로도 돌이키기 힘들 만큼 너무 멀리 가지는 말아야 하겠다.
삶의 어느 시점, 어떤 상황에서건  진정한  반성이 소중한 덕목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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