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산책을 하다 뜻밖의 장소에서 길고양이를 보았다.
어둠이 스멀거리고 날도 추워가는데 고양이는 얼어붙은 호수 위를 유유히 걷고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땐 호수 가운데를 향해 가길래 혹시나 얼음이 깨지면 어떻하나 조마조마 지켜보았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간에서 멈추어 잠시 가만히 서있더니 그냥 돌아나왔다.
먹을 것을 구하러 가는 것도, 짝이나 자기만의 잠자리를 찾아 지름길을 지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도대체 왜 얼음 위를 걸었던 것일까? 발이 시렵지는 않을까?
온갖 상상을 해보았지만 어느 하나 답이 나올리 없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다른 존재의 내면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고양이는 잠시 후 호수 밖으로 나와 숲으로 사라졌다. 숲 어딘가에 이 '고행의 수도자'가 하룻밤을 포근히 보낼 수 있는 '피안'의 보금자리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조용하여라
다정하여라
위태로워라
어긋나지 않고
침잠의 때에만 가만히 열리는
고양이가 다니는 길
말을 들어보니
사랑이 그러하네
먼 허공에만 빛 띄운 어둠의 길
가랑비와 함께 다니는 길
절벽과 노니는 길
격렬한 고요의 길
어긋나지 않고
따스하게 숨은
고양이가 다니는 길
- 장석남, 「고양이가 다니는 길」-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욱 즐거워진 아시안컵 (0) | 2024.02.04 |
---|---|
새벽 세 시에 차린 술상 (0) | 2024.02.03 |
서울상상나라와 눈썰매장 그리고··· (0) | 2024.02.01 |
가자! 가자! Indonesia! (2) | 2024.01.28 |
철든 장돌뱅이 (0) | 2024.01.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