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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새벽 세 시에 차린 술상

by 장돌뱅이. 2024. 2. 3.
*손흥민의 프리킥 골 순간 (사진 출처 연합뉴스)

새벽 3시에 차린 술상.
직장 생활을 할 때 새벽 3시까지 술을 마신 적은 있지만 새벽 3시에 술을 시작한 건 태어나 처음이다. 아시안컵 16강전의 짜릿한 승리에 이은 8강전의 또 한 번의 마술 같은 승리에 술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낮술을 언제든 마실 수 있다는 점과 새벽 3시까지 축구를 보고 술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백수는 '신선'에 가까운 것 같다.

예정에 없던 술 자리라 맥주는 준비해 둔 게 없고, 와인과 양주는 부담스러워 망설이다가 음식을 만들 때 쓰려고 사둔 '청하'가 눈에 띄었다. 냉장고를 뒤져 눈에 띄는 재료로 급히 안주거리를 만들었다.

이런 경기를 생에 몇번이나 볼 수 있겠는가.
늦은 아침에 일어나서도 승리에 대한 여운으로  여기저기 뉴스를 찾아보았다. 

'Son's fabulous free-kick.' 

'All the emotions after Korea Republic's dramatic finish!'

'Son Heung-min waves his magic wand, and the crowd goes well.'

'South Korea's play has been dubbed "zombie football" by their fans, a team that refuses to die.'

(손흥민은 굉장한 프리킥으로 마법 같은 승리를 이끌어 팬들이 '좀비축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나는 아시안컵을 앞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클린스만 감독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좋은 성적을 낼 것 같다는, 운이 좋을 것 같다는 기대감 아닌 '근자감'을 자주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클린스만은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우리나라에 골을 넣고 텀블링으로 골 세리머니를 하던 모습뿐이다. 그 뒤 그는 독일 대표팀이나 미국대표팀,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을 맡았지만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표팀을 맡은 뒤에는 국내에 머문 시간보다는 해외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새로운 선수를 발굴할 수도 없었던, 신임감독으로서 불성실해 보이는 그의 자세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유없이 아시안컵에서는 그가 어쩌면 64년 만에 우승이라는 성적을 낼 것 같기도 했다.

지장(智將), 덕장(德將), 용장(勇將), 운장(運將) 중에 최고는 운장, 이라는 농담이 있다.
힘이 좋은 장사하고는 싸워도 운이 좋은 놈하고는 싸우지 말라는 농담도 있다.
선수들의 투지와 집념이 가장 큰 승리의 요인인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클린스만의 전문성과 지도력에 대해 내가 말할 능력은 없지만 황홀한 두 번의 승리에 내가 예상했던 그의 '운'이 더해지지 않았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 새벽 술상 앞에선 좋기만 했다.
다만 이번 대회의 뒤에도 그의 '운'을 계속 시험(?)하는 건 좀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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