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인 입춘.
올해는 유난히 날씨가 포근해서 이미 봄이 시작된 것 같다.
머지않아 봄은 "느긋하지도 않고 바쁘지도 않은 걸음걸이로 (步復無徐亦無忙) 동서남북 어디나 두루 봄빛 (東西南北遍春光)"으로 가득 채울 것이다.
입춘첩을 붙이기에 아파트 구조는 옹색하다.
붙일 장소가 마땅치 않고 붙여도 썩 '폼'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따스한 기운'이 솟아 많은 '경사'와 '행운'이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정성껏 붙여 보았다.
입춘축은 다음 절기인 우수 전날 뗀다고 하지만 아내와 난 싫증이 날 때까지 붙여둘 생각이다.
동지 팥죽처럼 입춘에 특별히 먹는 음식이 있을까? 알아보니 있었다. 자극성 있는 오신채(五辛菜)를 먹는다고 한다. 파·마늘·달래·부추·무릇·미나리·자총이·평지 같은 채소 중 다섯 가지를 골라 먹는 풍습이다. 이외에 명태의 내장을 빼고 그 안을 고기와 채소로 채운 명태순대도 있다.
하지만 풍습은 풍습일 뿐이고 봄맞이 채소라면 아내와 내겐 추운 겨울을 이겨낸 봄동이 최고다.
우선 점심으론 냉장고에 있던 애호박, 당근, 양파 등속을 고명으로 넣은 잔치국수를 만들었다.
저녁엔 마트에서 사온 봄동으로 만든 네 가지 음식을 먹었다. 상 위에도 '입춘'이 가득했다.
"신은 우리의 몸을 충족하기 위해 특정한 존재들을 만들었는데, 나무와 풀과 곡식이 그것"이라고 플라톤이 말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월든』에서 "왜 상상력이 고기나 기름기와는 조화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해도 헛일일 것이다. 나는 그 대답을 모르며, 내가 아는 것을 단지 조화가 되지 않는다는 그 사실뿐이다. 인간이 육식동물이란 것은 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아내는 원래부터 채식을 선호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앞으로도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채식의 비중이 커졌다.
시나브로 채소의 싱싱한 맛이 진국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저명한 사상가들의 충고를 염두에 둔 의식적인 변화가 아니라 나이가 쌓이면서 생겨난 선물이다.
봄동은 당분간 누나와 지인이 보내준 여러가지 말린 나물과 함께 자주 상 위에 올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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