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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더욱 즐거워진 아시안컵

by 장돌뱅이. 2024. 2. 4.

내게 축구가 재미없을  때는 없지만 이번 아시안컵대회는 유난히 재미있다.
우리가 연극 같은 승리를 거푸 두 번이나 거두며 준결승에 진출한 데다 어제 일본은 역전패로 탈락하여 깨소금을 더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일본은 26명 중 20명이 유럽파로 구성되어 강력한 우승 후보라고 (남들 평가 이전에) 스스로 콧대를 높이 세웠다. 지난 월드컵에서 독일과 스페인을 꺾고 16강에 진출했고, 그 뒤에 강팀들과 치렀던 평가전에서도 승승장구 10연승을 했기에 허세만은 아닌 듯했다. 

*이란 승리의 순간(출처 : 연합뉴스)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전에서 한국은 일본에 진 적이 있다. 한국은 탈락 위기에 몰렸고 일본은 첫 월드컵 진출이 유력해졌다. 하지만 일본은 최종 이라크 전에서 추가 시간에 실점하여 골 득실에 앞선 우리나라가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우리는 '도하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일본은 '도하의 비극'이라고 부른다. 지금 일본 대표팀의 감독인 모리야스는 그때 일본 대표 선수로 뛰었다. 이번에도 그에게 도하는 비극의 장소였고, 우리? 아니 나에게는 즐거움의 길지(吉地)였다.

*도하의 기적을 보도한 1993년10월29일자 경향신문

직장 생활을 할 때 업무로 알게 된 일본 종합상사에 나보다 10년 가까이 연상인 일본인이 있었다. 그는 골프를 하면서도 축구 이야기를 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다. 김호, 김정남, 이회택 같은 옛 한국 축구 선수이름도 기억했다. 그는 '축구에 관한 한 일본은 한국을 영원히 넘어설 수 없다'고 자조적으로 이야기하곤 했다. 심지어 93년 '도하의 기적'에서 일본이 한국을 이겼을 때도 그는 '어쩌다 한 번은 이길 수 있겠지만 축구는 한국이 강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왜 그럴까? 업무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는 그가 나에게 립서비스를 할 이유는 없었다.
아마 그가 태어난 이래 한국을 시원하게 이겨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 축구는 '넘사벽'이라는 패배주의가 객관적인 전력 비교에 앞서 그에게 일종의 정서로 자리 잡은 탓 아닐까.

1968년 멕시코올림픽 예선전 우리나라와 일본 전

1968년 일본은 멕시코 올림픽 축구에서 동메달을 땄다.
아시아 팀으로서는 올림픽에서 거둔 첫 구기 종목의 메달이었다.
한 해 전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 예선전에서 우리와 3:3으로 비겼지만 골득실에서 앞선 일본이 본선에 나가 당시로서는 놀라운 성적을 거둔 것이다.  


그 이후 일본은 이제 자신들이 세계 무대로 향해야 한다며 아시아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에 잘 출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축구는 그들 생각대로 발전하지 않았고 칠팔십 년대에는 오히려 퇴보를 했다.
올림픽 메달은 지금까지 다시 따지 못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우리가 일본에게  2:0으로 이겨 동메달을 땄다.
2021년에 열린 도쿄올림픽에서 53년 만에 두 번째 메달을 노렸지만 일본은 4위에 그쳤다.
월드컵은 30년이 지난 1998년에서야 처음으로 출전을 할 수 있었다. 2000년 대 이후 우리에게 가끔씩 타격을 가하고 있지만 (최근엔 솔직히 우리가 조금 밀리는 느낌도 있지만) 그 이전까지 일본 축구는 킹스컵이나 메르데카컵 같은 아시아 대회에 자주 출전했던 우리에게 늘 '밥'이었다.


일본 감독은 이번에 이란에게 지고 나서(지기 전부터) "일본은 세계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여자 축구가 월드컵에서 우승한 적이 있으니 일본으로선 우리보다 세계 정상이 가까워 보이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어떤 꿈도 꿀 수 있어 꿈이겠만, 아시아에서도 8강에 머문 '주제'라 황당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아시아 축구를 넘어섰다(넘어서겠다)고 기고만장할 때마다 일본에겐 '현타'가 반복된다.

축구뿐만 아니라 일본은 다방면에서 걸핏하면 아시아와 차별성을 두려고 한다.  서구 지향이 강하다. 동(남)북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설날을 명절로 하지 않고 혼자서 양력설을 쇄는 것도 그렇다. 일설에 의하면 19세기말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아시아에 밀려와 문호 개방을 강요하던 이른바 서세동점의 시기에 큰 저항 없이 가장 쉽게 문을 연 나라가 일본이라고 한다.


축구 얘기를 하다가 좀 멀리 갔다.
나는 축구에 관한 한 절대적인 국수주의자이고 언제나 일본 축구의 '폭망'을 고대한다.
그래서 일본이 사라진  이번 아시안컵 대회가 어느 대회보다 즐겁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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